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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in

[바르셀로나] 느긋한 토요일 오후

 

 

 

[바르셀로나] 느긋한 토요일 오후

 

날이 밝았습니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한지 4일째 되는 날, 저는 뒤늦게 시차 적응이라도 하려는 듯 온몸이 뻐근했습니다. 여전히 무계획이 계획. 저는 디자인공간 사장 언니의 지도를 들고, 바르셀로나 구시가지를 돌아보기로 했답니다.

 

 

 

 

 

숙소였던 디자인공간, 대문을 나섰습니다. 토요일 아침, 골목은 고요했어요. 한국처럼 스페인에 있는 사람들도 격한 불금불금을 보냈던 걸까요?

 

저는 스페인에 오기 전부터 피카소를 만나고 싶었기 때문에, 첫 행선지로 피카소미술관을 가기로 했습니다. 남들은 구글 맵 지도로 편하게 길을 찾는다고도 하던데, 저는 데이터를 신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디자인공간 사장 언니가 그려줬던 핸드메이드 지도를 들고 움직였습니다.

 

 

 

 

 

짜잔, 어때요?

 

디자인공간 사장 언니는 매일 아침 주방 테이블에 앉아 수많은 여행자들에게 지도를 그려주었답니다. 지구를 꿰뚫고 있는 것처럼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머릿 속을 복원해내는 듯한 모습에 감탄, 또 감탄했던 기억이 나네요. 저와 같은 초보 여행자를 위해 수백번, 아니 수천번은 그렸을 테지만 그릴 때마다 분명 조금씩 차이는 있었을 테고. 그래서 저는 언니가 그려준 지도를 하나도 버리지 않고, 한국에 모두 가져왔어요. 왠지 버리기가 싫어서 :) 

 

그리하여, 지도로 결정된 오늘의 코스!

 

 피카소미술관 → 사장 언니가 극찬한 'Bubo' 초콜릿 카페 → 시우타데야 공원 → 개선문 + ?

 

왠지 아주 느긋한 토요일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느릿느릿, 피카소미술관을 가기 위해 길을 걷는데, 그때 어디선가 굉음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멀리서 드문드문 들리던 굉음은 이내 곧 가까워졌고, 그 횟수 또한 빈번해졌죠. 폭죽이 터지는 엄청난 소리에, 저는 가던 길을 멈추었습니다.

그러자 멀리서, 퍼레이드 행진을 하는 무리가 보였습니다.

 

 

 

 

빨간색 허리띠에 검은 바지차림이 어디선가 많이 본듯도 싶었습니다. 지식이 짧아 스페인 전통 복장인지 아닌지까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길거리 축제가 시작되는 것 같아 길목에 서서 저도 지켜봤답니다. 그러자 골목 이곳저곳에서 하나, 둘씩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어요.

 

 

 

 

퍼레이드 참가자 중에는 꽤 연배가 있어 보이는 할아버지 분도 계셨고요.

 

 

 

 

아주 나이가 어려보이는 작은 꼬마들도 보였습니다. 놀라운 점은 이들 모두가 퍼레이드 참가자로 함께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고, 일부러 짜 맞추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연주하고, 춤추면서 길을 걸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소리를 전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쉽네요. 우리나라 난타 공연이랑 비슷하다고 보면 될까요? 중간중간 다함께 구령을 넣으며 타악기를 두드리는 한 무리가 지나가면, 대형 인형들과 함께 행진하는 또 다른 무리가 나타났고, 그렇게 길거리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저는 이렇게 느닷없이 골목 길거리 행진이 시작되고, 무엇보다도 행진하는 사람들을 방해할까 통제선을 치거나 제지하는 지휘관들이 없다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우리나라라면, 아마 길을 갈라 한쪽을 막고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통제구역을 두지 않았을까요? 어쩌면, 이것이 작은 퍼레이드가 갖는 이점인지도 모르겠네요.

 

한 차례 퍼레이드 군단이 거리를 휩쓸고 가자, 저는 다시 피카소 미술관을 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일요일에 가면 무료로 입장도 가능하다고 했지만, 왠지 그래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올 것이라 여겨 일부러 토요일 오전에 간 것이었는데. 역시 주말은 주말인가 봅니다. 저는 약 1시간 가량을 기다려 겨우 겨우 입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

 

 

 

 

 

피카소미술관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돼 있어, 찍지는 못했습니다. 전시작품을 모두 관람한 후 출구 앞에서 이렇게 한장 찍었어요. 사실, 피카소미술관은 기대한 것만큼 만족스럽지는 않았다는 생각입니다. 일단 피카소가 어렸을 적에 그렸던 습작이 거의 대부분이었죠. 그래서, 그 그림들을 보면서 어떤 영감이나 감흥을 받기는 어렵지 않나 싶어요.

 

다만, 어렸을 적부터 어떻게 보면 영재교육이라고도 볼 수 있는 미술교육을 받아왔다는 것과 피카소가 어렸을 적 그렸던 습작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남겨두었던 부모의 선견지명(?) 같은 것이 신기하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참 많은 가족, 연인들이 피카소의 작품을 보러 이렇게 주말마다 찾는다는 것도요.

 

참참! 피카소미술관은 다들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미술관이 가까워올수록 길가 양옆으로는 피카소 작품을 파는 수많은 가게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기 때문이죠. 영어가 잘 통하지 않지만, 피카소라고만 말해도 길을 알려주는 친절한 스페인 사람들도 많고요.

 

자, 다음 일정은 초콜릿 경연 대회에 나가 다수의 수상 이력이 있는, 초콜릿 카페를 찾아 나섰습니다.

 

 

 

 

'Bubo' 카페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어요. 다만, 여기서는 홀로 조금 고심했던 기억이 나네요. 테라스에 앉을 것인가, 실내로 들어갈 것인가, 를 두고요. 저도 야외에서 맥주와 음식을 즐기는 사람들처럼 밖에 앉고 싶었지만, 일단 바깥자리가 더 비쌌고, 아직 여행 시작이니 돈도 좀 아껴야겠다 싶어 안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메뉴판을 봐도 뭐가 뭔지 모르겠고, 저는 초콜릿 케이크 유명하다던데, 그거 먹고 싶다고 얘기하면서, 커피도 주문했어요.

 

 

 

 

정말 찐~~~~한 초콜릿 무스 케이크였어요. 피로가 한방에 날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포크로 조금씩 먹는 데도 입안에서 진~~~~한 초콜릿이 사라지지 않았는데요. 이 엄청난 달달구리를 먹으면서, 저는 조금 외로웠습니다. 역시 밥이든, 술이든, 케이크든! 혼자 먹는 건 좋지 않은 것 같아요.

 

이 맛을, 저 혼자만 안다는 게 정말 너무 아쉬웠습니다. 특히 요리하는 동생에게 이 맛을 함께 나눠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기쁠까 한참 생각했어요. 그래서 더욱 맛있게 즐겼습니다. :)

 

그리고 제가 잘하는 것, 특별한 목적지를 두지 않고 걸었습니다. 그러다 성당 앞에서 결혼식을 막 끝내고 파티를 시작한 신혼부부를 보게 됐어요.

 

 

 

 

 

우리나라 결혼식은 대개 경건하게 진행되는 데 반해, 이곳은 정말 축제였어요!! 신랑, 신부는 성당 앞에서 서서 춤을 추고, 하객들은 함께 환호하고, 타악기를 든 부대는 신나고 경쾌한 곡으로 흥을 돋우웠죠. 저처럼 지나가던 관광객들 모두 길을 멈춰서서 사진을 찍었고, 박수를 치면서 누군지 모를 이 부부를 축하해주었습니다.

 

결혼하는 모습은 물론 결혼하는 부부만큼이나 다양하겠지만, 저도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이렇게 누구나 즐기고, 누구나 축하해줄 수 있는 결혼식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격식 차리지 않고, 이렇게 흥겨운 파티로 결혼식을 진행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정말.

 

그리고 또 한참을 걸어 공원에 도착했어요. 태양은 뜨겁고, 앉아 쉴 공간이 절실했답니다. 저는 공원 한가운데에 있는 호수 앞 벤치에 자리를 잡고, 누워서 음악을 들었습니다. 책도 챙겨가긴 했는데, 몇 장 읽지는 못했네요.

 

 

 

 

 

더워서 오래도록 앉아 쉬다가, 잠깐 잠도 잤다가, 그렇게 아무런 계획도 목적도 없이 공원에 있다가 근처에 있는 개선문도 들렀는데요. 개선문을 본 것보다는 역시 저는 길에서 본 사람들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1년쯤 지나고 나니, 개선문은 오로지 더운 날씨에 걸어가느라 땀 흘렸던 기억뿐인데, 그럼에도 땀을 흘리면서 스쳐갔던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짧은 인상은 특별하게 남았습니다.

 

 

 

 

 

 

 

거리의 악사도, 오후를 즐기는 스페인 사람들도, 모두 여유로워 보이는 건 제가 여행자의 시각으로 그들을 봤기 때문이겠죠? 그럼 우리가 평일 내내 지독한 야근에 시달리고, 토요일 느즈막히 일어나 친구와 커피 한잔하는 모습도, 외국인들에게는 여유롭고 평화로워 보일까요?

 

저는 토요일 오후, 어느 누구도 만나지 않고도 여유롭고 느긋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물론 그렇게 많은 일정이 아니었지만, 여러 곳을 둘러보고 머무르고도 날은 한참 밝았고. 그래서 저는 예정에는 없었지만 한 곳을 더 가보기로 결심했습니다. 물음표로 두었던 마지막 코스, 저는 이곳에서 봤던 사람들의 모습과 바람과 하늘색이 한국에 돌아와서도 선명하게 떠올랐기에, 그곳은 느긋한 토요일 이른 저녁쯤으로 다시 글을 써볼까 합니다.

 

그럼 잠깐 쉬고, 저녁 이야기에서 다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