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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될 수 있을까

내가 니편이 되어줄게

 

오늘 드디어 4월의 마지막 숙제가 끝났다.

 

그러니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이제는 말해도 된다.

 

지하철 타고 집에 가는 날보다 택시 타고 집에 가는 날이 더 많아도

모두가 퇴근하고 홀로 사무실에 남아도

쉬는 날 없이 몇 주 내내 출근했어도

 

잘 참을 수 있다고, 참다보니 어느 순간 재미도 있었다,고 생각했던 예전의 나와 달리 4월은 정말 참을 수 없는 날들이 몹시도 많았다. 모든 걸 내팽겨치고 어디론가 도망가버리고 싶은 심정의 연속이었다. 그만두고 싶고, 그만둘까 고민했고, 그만둘까 말을 내뱉지 않으면 견딜 수 없던 날들. 그 날을 버티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고개를 들어 눈물을 삼켰다.

 

 

사건의 발단은 '잔인'이라는 단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몹시도 아름다운 '미녀' 때문에 시작됐다. 미녀 인터뷰의 최초 기획자(혹은 발제자)는 나였으니 어쩌면 내가 내 무덤을 판 것이라고 해야할까.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이번에는 너무 가혹했다. 나는 일이 이렇게나 틀어질 줄 전혀 생각지 못했다. 

 

미녀 기획은 단순히 말하자면 전문직 일반인 여성을 대상으로 골프에 관한 인터뷰를 하고, 사진을 찍어 보도자료를 만들어 지면에 쨍-! 하게 싣는 것이었다. 다만 이 전문직 여성들은 예뻐야 했다. 그리고 이들은 골프를 즐길 줄 알아야 했고, 가능하면 20대 혹은 30대여야 했으며, 평일에 서울 혹은 경기 인근 골프장에서 촬영이 가능해야 했다. 일명 브랜드를 위한 애드버토리얼(광고형 기사)이나 별도의 모델료가 지불되지는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섭외가 쉽지 않았다는 게 첫번째 난항이었다.

 

예쁘고(외모나 몸매가 좋고), 핏이 좋고, 젊고, 골프를 즐기고, 전문직 종사자라는 것은 OR이 아니라 AND의 조건이었다. 넓지 않은 인맥을 거의 총동원, 이리저리 수소문한 끝에 모 홈쇼핑 진행자와 모 항공사 승무원을 섭외했다. SNS를 통해 스타일리스트, 웨딩 플래너, 포토그래퍼, 헤어 디자이너 등을 검색해서 골프 치는 사진이 1장이라도 보이면 무조건 DM을 보냈다. 이게 3월 마지막 주의 일이었다.

 

4월 첫주에는 인터뷰 대상자 섭외를 끝내고, 촬영 장소와 포토그래퍼를 섭외해야 했다. 물론 내게는 이 기획 외에도 고정적으로 진행되어야 하는 홍보 아이템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었다. 게다가 새로 시작한 보청기 브랜드 담당자와는 거의 매주 미팅을 하고 있는 상황. 한마디로 정말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섭외한 인터뷰 대상자를 한날한시에 몬다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는 점이었다. 인터뷰 대상자 두 명이 맞으면 한 명이 어긋났고, 다시 시간을 바꾸면 이번엔 또 다른 한 명이 맞지 않았다. A와 B를 맞추면 C가 안되고, B와 C를 맞추면 이번에는 A가 불가능한 식이었다. 대안으로 D와 E를 찾으니 이번에는 A, B, C가 모두 맞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 시간은 자꾸 지나가고 있었다.

 

일정 확정이 늦어지는 상황에서 다른 날은 또 안되냐, 이 날은 안되냐, 마지막으로 이 시간대는 안되겠냐,를 수시로 묻자 A, B, C, D, E들도 점점 지쳐가고 귀찮아한다는 게 느껴졌다. 급기야 가장 기대했던 인터뷰 대상자 중 한 명은 다른 업무 스케줄로 인터뷰 조율이 어렵겠다는 연락을 해왔다. 또 다른 대상자는 바라는 사례 혜택이 우리가 준비한 것보다 배 이상으로 많았던 터라 더 이상 이마저도 잡을 수 없게 됐다.

 

지면이 게재되어야 하는 내부의 데드라인이 있어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두 명으로 진행하자는 말은 설득되지 않았다. 다시 찾아 리스트업을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했다. 별 수 없이 현재 풀 안에서 한 번 더 일정을 조정해야 했다.

 

모 인터뷰 대상자의 헌신적인 배려 덕분에 가까스로 일정을 잡았다.

 

그러나 그때 두 번째 멘붕이자 난항이 찾아왔다. 당장 다음주 촬영 일정을 잡아놓고 이 날밖에 안된다는 식의 통보와 촬영 일정을 잡아놓고도 촬영&인터뷰 기획안은 주지 않는 내 태도에 본사 담당자가 불만이 생긴 것. 서둘러 한 장짜리 기획안을 만들어 메일을 보냈다. 그러자 포토그래퍼 섭외가 되었다.

 

부랴부랴 골프장 예약을 하고, 인터뷰와 촬영을 하게 될 세 명에게 장소와 시간을 안내하고 챙겨와야 할 준비물(캐디백, 소품 등)과 함께 사전 질문지를 보냈다. 4월 7일 금요일 저녁 6시 무렵의 일이었다.

 

긴 한 주였다.

 

그 이유는 핑계처럼 들리겠지만 그 외의 업무가 너무 많았다. 당장 4월 말에 또 다른 촬영 겸 라운딩이 잡혀 있었다. 상사는 본사 앞에서 담당자가 너무 못하는 티 내면 안된다는 걱정인지 협박인지 모를 말들을 계속 했고, 심지어 본사에서도 대행사 담당자들이 너무 골알못이라는 얘기를 대놓고 했다. 그 때문에 또 다시 나는 속성과외를 받듯 연습장을 등록했다. 새로 온라인 업무를 맡게 된 옆팀 대리와 함께.

 

 

우리는 4월 내내 점심시간 밥 대신 골프 연습장을 택했다. 6시가 지나면 연습장에 갔다가 저녁을 먹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못다한 업무를 처리했다. 그래도 실력이 늘지 않아 1시간 일찍 출근해 회사에 가방을 두고는 다시 골프 연습장을 갔다. 그 아침 연습장 벽을 때리는 공 소리는 우리가 만들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초반에는 매일 나가지 못했다. 어디까지 가능한가를 시험하는 듯 업무가 자꾸 늘었다. 새로 맡은 보청기 회사는 4월 첫주 삼일 내내 본사 교육을 잡아주었다. 9시부터 5시까지 마치 3시간짜리 전공수업을 공강도 없이 풀로 듣는 기분이었다. 끝나면 퇴근하고 싶은 마음을 부여잡고 밀린 업무를 하기 위해 회사로 향했다. 올해 흩날리는 벚꽃은 가산에서 합정을 오가는 서부간선도로를 지나는 동안 멀리서 본 안양천 벚꽃, 그게 다였다.

 

 

인터뷰 촬영을 앞둔 전날은 회사 전체 회식이 있었다. 연희동에 있는 정호영 셰프 가게에서 다같이 식사를 하고, 2차로 근처 펍을 갔다. 입사 이래 단 한 번도 회식 때 먼저 일어난 적이 없었는데(심지어 늘 끝 멤버였는데) 그날 처음으로 회식에서 먼저 일어섰다. 그만큼 다음날 촬영이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역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세번째 멘붕은 골프장 현장에서 들이닥쳤다.

 

인터뷰와 촬영이 이렇게 큰 스케일로 진행되는 줄 몰랐던 한 명이 당황스러움을 표시했던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날은 바람이 너무나 많이 불고 추웠는데, 하필 옷은 얇았다. 직접 포즈를 잡아야 하는 당황스러운 촬영이다 보니 도중에 가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고, 어떻게든 나는 설득하고 애원해 촬영을 이어가야만 했다. 분명한 미스커뮤니케이션이었다. 내가 정확하게 몇 번이고 설명하고, 확인했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싶은 마음이 스스로를 괴롭혔다.

 

그렇게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티업 시간을 놓쳤고 골프장은 물론 본사에서도 컴플레인을 하기 시작했다. 제발 현장 컨트롤을 하라는 것은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일손이 또한 부족했다. 옆팀 대리를 스텝으로 데리고 갔지만 모델 세 명을 케어하고 번갈아 가며 하는 촬영에 맞춰 카트에서 클럽(아이언, 드라이버, 퍼터)을 순서대로 가져오는 것 또한 정신이 없었다. 포토그래퍼 또한 스텝을 데려오지 않아 우리는 반사판 드는 역할까지 해야만 했다. 어떻게든 그 상황을 해내야만 했고, 터져 버린 문제들이 더 커지지 않도록 촬영을 해야만 했다.

 

 

 

그러다 결국 따라온 동료 대리는 벙커에서 모래 벼락을 맞았다. 예고도 없이 몇 차례나. 모래를 맞고 놀란 마음을 진정시킬 겨를도 없이 촬영은 계속 됐다. 잔디에 무릎 꿇고 무거운 반사판을 들다가, 클럽을 챙겨주다가, 추운 날씨에 온기를 나눠주다가... 그렇게 끝없이 무언가 해야 하다 보니 현장에서 인터뷰를 하기란 불가능했다. 인터뷰는 나중에 하기로 미뤄뒀지만,

 

어쨌든 그날은 종료되었다.


우리가 맞은 건 모래였고, 고작 모래일 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상하게 촬영 이후 며칠간 우리는 쳐다보기만 해도 자꾸 눈이 벌개졌고 목이 메었다.

 

물론 가장 큰 잘못은 내게 있었다. 현장을 제대로 지휘할 수 있었어야 했다. 티업 시간을 잘 맞추고 진행에 차질이 생기지 않았더라면 상황이 악화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나중에 따로 얘기하자'던 본사 담당자는 결국 상사에게 크게 컴플레인을 했다. 그래도 실무자들이 애착을 갖고 열심히 한다는 마음은 잘 알지 않냐는 상사의 말은 오히려 화를 키웠던 걸까. 담당자는 그 마음은 성과(결과)로 확인되는 것이라고 답했다. 맞는 말인데 이상하게 너무 아팠다. 그게 아물지 않은 상처에 그대로 꽂혀 며칠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럼에도 고작 12일이었다.

 

나는 모델들을 다시 만나 인터뷰를 해야 했다.

 

 

비 오는 금요일 청담동 모 카페에서 첫번째 인터뷰이를 만났다. 그녀는 내게 말했다.

 

"뭔가 이상하게 기자랑 인터뷰하는 기분이 드는 거 같고 긴장되는데요?"

 

별 것 아닌 말에도 흔들리는 시점이었다. 그 질문을 내 스스로 홍보 담당자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로 해석하게 될까봐 괜히 그 상황을 넘기기 위해 아무말대잔치를 벌였다. 우여곡절 끝에 세 명의 인터뷰를 끝내 자료를 만들었다.

 

자료 컨펌을 받는 오후에는 대표님을 따라 급 라운딩을 갔다. 스트레스 받는 나를 배려해서 바람 쐴 겸 데려가주신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라운딩 자리가 자리인 만큼 부담이 됐다.

 

 

그래도 자유로를 지나 인천대교를 건너는 동안 햇볕 때문인지 사무실을 떠나서인지 마음이 잠시 편안해졌다.

 

한낮에는 치마가 들리고 모자가 벗겨지고

머리가 앞을 모두 가릴 정도로 바람이 불더니

 

해가 지고 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하고 잠잠해졌다.

 

'밤에도 빛은 있으니까' 라는 생각으로 행복의 주문을 걸었다.

 

그러나 난항은 계속됐다.

인터뷰 자료를 매체에 피칭해야 했다. 

 

피칭하기 힘든 자료라는 걸 알면서도 기획한 건 나였기 때문에 역시나 '어떻게든' 해야만 했고,

정말 다행스럽게도 매년 5월 구세주처럼 나타나는 모 매체 차장님 덕분에 나는 한시름 놓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면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고, 다시 연기되었다.

그래서 계속 초조했다.

본사는 기다리고 있었다.

 

상사는 지면 나가기 전에 무조건 차장님(기자)을 만나라는 지시를 했다. 4월 말 라운딩 가기 전까지 약속을 잡아야 했다. 그러나 차장님의 가족상으로 일정이 연기되며 결국 4월 말 라운딩 전까지 만나지 못했다. 5월 초는 연휴가 길었고, 그래서 만나지도 못하고 지면도 나갈 수 없게 되자 나는 더욱 초조했다. 인터뷰이들도 기사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기에 너무도 쪼였다.

 

또 다른 곳에서 문제가 생겼다. 지면 일정을 확인하려고 자주 연락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차장님까지 쪼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 결국 차장님도 불만을 표하고 말았다. 만나서 자초지종을 설명했으나 무언가 여전히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기다리던 기획은 드디어 지난주 거의 한 면에 걸쳐 나왔다. 그러나 (사진만 크게 실리고 텍스트가 실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본사에 크게 생색도 못내고 도리어 깨지고 말았다. 게다가 주말에 이미 기사는 나왔는데 우리가 전달한 자료와 달라 좋지 않다는 이유로 본사 보고(토요일 주말자니까 월요일 아침에 보고)를 늦추라는 상사 지시에 다른 내 입장을 강하게 어필하다가 또 깨졌다. 월요일 본사 담당자와 직접 얼굴을 대면해야 하는 나로서는 그랬다가 도리어 상황이 안 좋아질 거라고 했으나 설득되지 않았다. 상사 지시를 따랐으나 결국 월요일, 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행사장에서 영혼이 털리고 말았다.

 

어쨌든 그래도 수십차례 멘탈이 털리는 우여곡절 끝에 기획은 종료됐다.

 

4월에는 이외에도 어그러지는 업무들이 계속 생겼다. (대학생부터 일반인까지...말할 수 없는 부분들의 불협화음) 결국 새벽 연습 '제주도의 푸른 밤'을 함께 들으며 마음을 달래던 대리는 그만두기로 결론을 내고 말았다. 그리고 회복되지 않은 내 마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