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애란

[리뷰] 비행운 김애란 작가의 『비행운』을 읽은 뒤로 나는 공항에 갈 때마다 『비행운』에 실렸던 단편소설이 생각난다. 황금연휴를 맞아 한국을 떠나기 위해 공항으로 몰려든 사람들 곁에 홀로 남아 공항을 청소하던 아주머니의 삶을 그려낸 ‘하루의 축’ 때문이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이면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할까.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마구 물기를 털었던 나는 그 뒤로 보다 조심하게 됐다. 그러다가 자칫 입을 벌리고 속을 훤히 보일까 두려워 노란 테이프로 칭칭 감았던 오래된 내 캐리어 가방을 보면서 또 한번 소설을 떠올렸다. 해외여행갈 때 가져갈 캐리어가 없어 친구에게 빌렸지만 이래저래 들어간 돈과 시간을 생각하면 사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후회했던 이야기 말이다. 내게 김애란 작가의 소설은 어디선가 일어날 일이 아니라, 지금.. 더보기
기우는 봄, 우리가 본 것 우연히 문학동네 계간지 여름호에 실린 김애란의 '작가의 눈'을 읽었다. 읽고 나서 한참 동안 눈시울이 붉어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눈이 뜨겁고 마음이 뜨겁고 무언가 목구멍으로 끊임없이 울컥거리는 게 넘어오는 거 같아 나는 먼발치만 바라보았다. 순간적으로 용산 철거민 참사가 생각났고, 그 참사 2주기 즈음, 안타깝게 허망하게 담아낸 심보선 시인의 '거기 나지막한 돌 하나라도 있다면'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는데, 여전히 삶이, 바닥에서 울부짖고 있는 듯하다. 문학동네에 실렸던 김애란 작가의 글을 잊고 싶지 않아 전문을 옮겨놓는다. 덧붙여, 심보선 시인의 시 한편도 함께. (문제 시, 자진삭제하겠습니다.) 참고로 오늘은, 밀양 송전탑 건립 반대 농성장이 철거된 날이다. 기우는 봄, 우리.. 더보기
우리 둘은 얼어붙지 않을 거야 겨울에 만난 우리는 여름에 헤어졌다. 헤어지기로 작정하고 만났던 그날은 우리의 기념일을 10일 정도 앞둔 날이었다. 그는 그즈음 기념일에 무얼 하면 좋을지, 선물은 무얼 할지에 빠져 있었다. 반면 나는 달랐다. 기념일이 가까워올수록 마음이 다급했다. 우리에게 그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선물, 이벤트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전에 헤어질 텐데, 뭘. 헤어지기로 작정한 날은 하필 날이 몹시도 맑았다. 덥고 눈부셔서 헤어지는 날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어울리지 않는 듯한 느낌이었다. 우리는 일식 돈가스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나는 밥을 먹는 내내 줄곧 딴 생각(말할 타이밍)을 하느라 그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귀는 동안에도 그와 헤어졌던 적이 전혀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헤어지자고 말하고, 다시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