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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밑줄] 청춘의 문장들 +

 

 

 

그리고 여전히 우리에게는

떨어지는 꽃잎 앞에서

배워야 할 일들이 남아 있다.

 

*

 

<청춘의 문장들>이 출간되고 10년이 지나는 동안, 나의 삶에도 수많은 손님들이 찾아왔다. 때로는 조금 더 오래 머물기를 바랐던 기쁨의 순간이 있었고, 때로는 내게서 빨리 떠나기를 바랐던 슬픔의 나날이 있었다. 어떤 기쁨은 내 생각보다 더 빨리 떠나고, 어떤 슬픔은 더 오래 머물렀지만, 기쁨도 슬픔도 결국에는 모두 지나갔다. 그리고 이젠 알겠다. 그렇게 모든 것들은 잠시 머물렀다가 떠나는 손님들일 뿐이니, 매일 저녁이면 내 인생은 다시 태어난 것처럼 환한 등을 내걸 수 있으리라는 걸. 어떤 손님들이 찾아오든 마다하지 않았으나,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도 또 뒤에도 여인숙은 조금도 바뀌지 않듯이.

 

 

 

 

"꿈들! 언제나 꿈들을!" 이라고,

"사람들은 각자 자신에 맞는 양의 천연적 아편을 자신 속에 소유하고 있는 법. 이 끊임없이 분비되며 새로워지는 아편"

 

이라고 노래한 사람은 프랑스 시인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였습니다. 그 아편의 대부분은 스무 살 무렵에 만들어집니다. 더 많이 기뻐하고 더 많이 슬퍼하고 더 많이 갈망하시길. 자신의 인생에 더 많은 꿈들을 요구하시길. 이뤄지든 안 이뤄지든 더 많은 꿈들을 요구했던 그 시절의 기억이 당신들을 살아가게 만든다는 걸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알게 될 테니.

 

*

 

"멀리서 바라보는 빛이, 마치 새로 짠 스웨터처럼, 얼마나 따뜻한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 것 같아 가만가만 고개만 끄덕인다."

 

*

 

"이 세계를 알고 싶다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 같아요. (...) 절망하고 좌절하는 이유는 우리가 뭔가를 원했기 때문이겠죠. (...) 열망을 열망하고 연애를 연애하고 절망을 절망하던 시절, 원하는 현실은 대부분은 저 멀이, 아주 멀리 있었어요. 심지어 절망마저도. 그래서 진짜 절망하는 것도 힘들었던 시절이었어요."

 

*

 

"그런데 그때 괴롭고 힘들고 고민스러웠던 일들은 정말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요. 물론 뭐가 힘들고 고통스러웠는지는 기억나지만, 고통이라는 건 실제적인 아픔이지 머릿 속 기억이 아니잖아요. 그래서인지 되살아나는 감각들은 모두 좋았던 것들뿐이에요. 감각적으로 우리는 고통에 훨씬 더 쉽게 몰입하는 경향이 있지만, (...) 온몸과 마음을 다 바쳐 즐긴 것들은 평생을 가니까, 가능하면 그런 일들을 더 많이 해야죠."

 

*

 

"떠도는 풍문들은 모두 그런 식의 무지와 오해로 인한 공포로 이뤄져 있었다. 하지만 풍문을 파고들면 거기에는 허점이 많았다. 우리가 믿는 것들은 대개 무지와 오해에서 비롯된 환상일 가능성이 많다. 또 우리는 무지하지 않은데, 정치인 등이 우리를 오해하게 만들어 환상을 보게 하는 경우도 많다. 나는 그런 환상의 본질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소설을 썼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확신의 세계에서는 이야기가 잘 생겨나지 않죠. 이야기라는 건 이성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어떤 일들을 납득하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소문을 듣는 일은, 곧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 정도로 불온하고도, 또 그만큼 매력적이라는 걸 그때 절절하게 느꼈습니다. 이야기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세계는 내가 알지 못하는 신비로 가득 차 있었어요."

 

"이제 외로움은 평생 내가 거부하면서도 껴안고 가는 뭔가가 돼 버렸는데, 모든 건 아마도 그 시절부터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외롭기 때문에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소설가로 계속 살자면, 그러니까 계속 외로워야만 하는 것이겠죠."

 

"저는 원래 글 쓰는 재능이 없었던 사람이기 때문에 재능 같은 게 없다는 사실을 한탄한 적이 없었던 거죠."

 

*

 

"체력과 정신력이 행복하게 만나는 나이가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까지입니다. (...) 내가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다 썼고, 그래서 너무나 만족스럽고, (...)"

 

*

 

"예를 들어 20대를 제 책과 함께 보낸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서 어떤 책은 대학교 신입생 시절을, 어떤 소설은 남자친구를 만나던 그해를, 또다른 소설은 그 남자친구와 헤어진 가을을 떠올리게 하는 식이죠.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깜짝 놀라요. 이건 정말 대단한 일 아닌가요? 제가 완전히 몰입해서 어떤 소설을 만드는 것 만큼이나 대단한 일이죠. 다른 사람들의 인생에 개입하는 한 권의 책으로서의, 물질로서의 소설이 된다는 것 말이죠.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이란 걸 알게 됐어요."

 

*

 

"그러므로 결론은 가장 밝은 순간에는 물론이거니와 가장 어두운 순간에도 개를 발로 차는 사람은 되지 말자는 것."

 

*

 

"언제나 그렇듯이 내가 알던 나날들은 이미 다 지나갔고, 검은 밤 안에서 하늘과 호수가 구분되지 않듯이 즐거웠던 일들과 슬픈 일들이 모두 하나의 과거 속으로 돌아갔다. 그런데도 '지금 나는 30대 초반이구나'라고 생각하니 그 사실이 너무나 중대한 진실처럼 여겨졌다. 그제야 지나간다는 게,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게, 봄날은 간다는 게 무슨 뜻인지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열심히 산다는 건, 그 많은 나날들을 열심히 과거 속으로 보낸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

 

"인류가 여전히 고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 우리가 아무런 의지도 없이 누군가를 흉내 내기 때문이라는 생각, 말하자면 반복하는 거예요."

 

*

 

"문학 감상은 익숙한 것들에 계속 의문을 던지는 과정이에요."

 

*

 

"나이가 많고 적음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언젠가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는 고아가 된다." 택배 상자를 앞에 놓고 한참 읽었네요. 그건 마치 누군가 내 마음을 대신 읽어주는 것 같더군요. 독서를 통한 치유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이 됐어요.

 

C.S.루이스가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은 참 신기해요. 독서는 혼자서만 할 수밖에 없는데, 정작 책을 읽으면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죠. 심지어 수천 년 전의 사람과도 서로 연결되기도 하고요."

 

"작가로서는 소설 쓰기가 나를 치유해주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어요. 소설을 쓰는 일은 치유보다는 나를 넘어서는 일에 가까우니까요. 대신에 노트에다가 뭔가를 쓰는 일은 도움이 됩니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노트에다 손으로 뭔가를 쓰면, 그것도 오랜 시간에 걸쳐서 쓰게 되면 마음이 정리되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날마다 일정 분량의 글을 쓰는 일은, 신경안정제를 먹는 일보다 더 좋아요. 그게 무슨 내용의 글이든. 그때는 손으로 쓰시길."

 

*

 

누군가의 문장을 읽는다는 건 그 문장 안에 살다 오는 거라 생각한 적이 있다. 문장 안에 시선이 머물 때 그 '머묾'은 '잠시 산다'는 말과 같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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