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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리뷰] 변두리

 

 

제일 첫 장을 통째로 할애해 적어 놓은 ‘내 삶의 중심, 변두리에게’란 말이 괜히 마음을 짓눌러 시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하고 싶은 말과 해야 할 말이 아카시아 꽃잎처럼 머릿속에 흐드러졌다”던 주인공 수원의 말처럼. 내가 <변두리>를 읽고 느낀 감정과 작가가 글을 쓸 수밖에 없었을 어린 시절의 경험은 설명이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내가 가진 빈약한 단어와 문장으로는 더더욱.

 

유은실 작가의 <변두리>는 사실 문장이 수려하거나 재치 넘치는 소설과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정공법을 구사하는 쪽에 가깝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피하지도, 우회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때로 가혹할 정도로 디테일한 묘사가 뒤따른다.

 

제목에서 유추 가능하듯, <변두리>는 넉넉지 않은 가정환경 탓에 서울의 가장 변두리에 속하는 도살장 주변에 근거지를 마련한 한 가족의 누추한 생활에 관한 이야기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수원’이라는 여자 아이로, 이제 막 부끄러움을 아는 사춘기 나이에 접어들었다. 그래서 수원은 변변치 않은 살림살이에 유달리 키가 큰 것도, 감기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튼실한 체력도 부끄럽기만 하다. 그러나 실상 수원이 부끄러운 이유는 다른 데 있다.

 

“학교에선 성금을 못 낸 아이들을 골라 ‘착한 어린이 상’을 주었다. 조회 시간에 학용품 세트를 받는 착한 어린이들은 하나같이 꾀죄죄했기 때문에, 아이들은 그들이 불우 이웃이라는 걸 금세 알아차렸다. 상숙은 작년에 그걸 받고 부쩍 소똥 냄새가 난다고 놀림당했다. 영미는 ‘상숙이는 백정 딸’이라고 떠들어 댄 것도 그때부터였다.

 

나는 진작부터 엄마한테 성금을 달라고 했다. 엄마는 우리가 불우 이웃이라면서 입을 딱 닫았다.”

 

수원이가 부끄러움을 알고 말을 더듬긴 하나, 더없이 착한 아이이기도 하다. 술 먹고 개천에 빠져 허리를 다친 아빠를 위해 기력 회복에 도움이 될 고기 살 돈을 모으려는 생각을 할 줄 알고, 아빠 대신 생계를 책임지는 엄마를 도와 동생을 돌볼 줄도 아는 아이인 것. 물론 도살장(도축장) 근처에서 나오는 선지를 얻으러 다녀올 줄도 안다.

 

하지만 그 선지가 그만 화근이 된다. 들통 가득 선지를 얻어 집으로 돌아오던 아침, 횡단보도에서 교통 담당하는 영미를 만나게 된 것. ‘상숙이는 백정 딸’이라고 놀려대던 그 영미 말이다. 때문에 수원은 약수를 받아오는 길이라는 대답을 하면서도 말을 더듬고, 약수 좀 달라는 영미의 말에 컵이 없다고 얘기하면서도 말을 더듬는다. 이처럼 아슬아슬한 상황은 우리의 바람과 달리 결국 가장 최악의 국면으로 이어지고 나서야 끝이 난다. 수원 손에 들린 들통이 쏟아지는 것.

 

“얘들이 저런 걸 사다 먹나봐. 불쌍해라.”

“동네가 후지니까 출근길에 별걸 다 보네.”

 

“나는 널브러져 있을 새가 없었다. 양에다 간까지, 일 년에 한 번도 얻기 힘든 귀한 덤이었다. 나는 흙 범벅이 된 선지 덩어리들을 그러모아 들통에 담았다. 바닥에 빈대떡처럼 달라붙은 양도 떼어 담았다.”

 

피범벅이 된 꼴을 영미에게 보인 것보다도 수원을 괴롭히는 건 눈앞의 현실이었다. 엄마의 고함, 아빠의 술주정, 낡은 부엌살림, 선짓국 끓이는 냄새, 화장실 가는 것. 담 없는 이 집에선 숨길 수 없는 게 너무 많았다. 게다가 이제 겨우 초등학교 6학년인 수원에게 착한 딸 역할은 보이지 않는 족쇄와도 같았던 모양이다. ‘공경할 줄 아는 어린이를 포기하고 싶었다’거나 ‘우리 딸만 믿는다는 엄마의 말이 덤을 잔뜩 받은 선지 들통만큼이나 무거웠다’고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수원이 우리의 예상이나 선입견처럼 삐뚤어지지 않는 것은 이 아이에게는 자신의 곤궁한 현실을 상쇄할 만한 ‘판타지’가 존재하고 있어서다. 동생과 이산가족 찾기 놀이를 할 때만큼은 수원도 피아니스트 엄마와 대학교 교수 아빠를 둔 부유한 집안의 몹시도 사랑스러운 외동딸이 될 수 있었다. 과대망상과도 같은 일종의 판타지가 있어서 수원은 부끄러움으로부터 일시적이지만 자유로울 수 있다. 이 순간만큼은 수원도 더 이상 말을 더듬지 않는다.

 

그러나 판타지가 끝나고 기다리는 상황은 매순간 삶을 저버리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현실이다. 구민 체육 센터 건립 공사 덕분에 새 아파트로 이사 갈 거란 기대에 부풀었던 상숙이네는 막상 공사가 시작되고도 집이 무너지지 않아 결국 그 자리, 그 집터에서 여전히 살아야 하고, 밤벌레 할머니 덕분에 수원에서 장사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던 정호네도 밤벌레 할머니의 거짓말에 낚여 헛꿈을 꾼 꼴이 돼 변두리를 떠나지 못하고 살아야 한다.

 

“나는 더 이상 밤벌레 할머니 얘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구석에 쪼그리고 앉았다.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길 같은 건, 이 세상에 없었다. 어쩌면 수원성도 포클레인으로 다 부수고 아파트를 짓고 있는지 몰랐다. 다시는 동구 밖 과수원 길 노래를 부르지 않을 거라고, 이산가족 놀이도 하지 않을 거라고, 그리고 황룡동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고 살 거라고, 나는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에서도 일말의 희망과 기대를 거두지 않는 것은 이웃들의 사소한 걱정과 관심이 삶을 이어가는 지지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허리를 다쳤던 아빠가 취직한 다음부터 집에 내장과 선지가 풍족해져 정호네와도 나눌 수 있게 돼 뿌듯했다는 수원의 말에는 수원의 아빠가 누군가에게 ‘덕분에’가 될 수 있다는 기쁨과 믿음이 내재돼 있다. 그래서 다시 한 발 내디딜 수 있다.

 

“나는 엄마를 따라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1985년 8월의 마지막 토요일 밤, 사라진 아카시아 숲 쪽으로, 무너지지 않은 상숙이네 집 쪽으로.”

 

정호네 엄마가 상숙이네 집 앞에서 커피 장사를 할 수 있도록 엄마와 함께 상숙이네 부탁하러 가는 1985년 8월의 수원은 열 세 살이었고, 수원의 이야기를 만들어낸 유은실 작가의 1985년 나이는 열 두 살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 변두리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던 작가는 30년이 지나 ‘자신의 삶의 중심이 변두리’라 말하는 소설가가 됐다. 아마도 변두리였기에 글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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