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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여행

제주도가 아닌 서울에서도 끝까지 근사했으면 좋겠다. 키 낮은 돌담길을 한참 지나야 다다르는 그곳의 (유일한) 단점은 골목을 꽤 오래 헤매야 찾을 수 있는 위치라기보다는 쉽게 적응되지 않는 남녀공용 화장실이었다. 공용보다는 청결이라고 말하는 편이 사실 더 적확한 표현이겠다. 예민한과는 거리가 먼 나조차 문 앞에서 크게 쉼호흡을 해야하는, 거창한 시간이 필요했다. 번번이 눈을 질끔 감았던 내가 고민 없이 사용했던 때는 흥겹게 취했던 저녁 때뿐이었다. 그 순간마다 "성공한 인생이란 적어도 변기에 앉아서 보낸 시간보다는, 사랑한 시간이 더 많은 인생이며 변기에 앉은 자신의 엉덩이가 낸 소리보다는, 더 크게 더 많이 '사랑해'를 외쳐야 한다." 고 말한 박민규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을 떠올렸다. 어떻게 기억이 난 건지 알 수 없지만 그 구절을 곱씹으며.. 더보기
한라산을 고집해야 할 특별한 이유 태풍에 맞서면서까지 한라산을 고집해야 할 특별한 이유는 사실 없었다. 이번이 아니어도 올 시간과 기회는 충분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속이 상했다. 수요미식회에 나온 명진전복을 못 먹게 되었다는 것보다 평대리 해안도로를 덮치는 파도 앞에 발이 묶여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 심지어 나중에는 속이 쓰렸다. 숙소로 돌아와 흠뻑 젖은 옷을 정리하며 급기야 한라산을 못간다면 이번 제주 여행은 안한거나 다름 없다는 말도 안 되는 결론을 내렸다. 한라산도 못 가게 된 화요일에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했지만 어느 것에도 마음이 내키지 않아 한참을 뒤척이다 결국 그냥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앞이 안 보이는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리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수긍하지 못하고 끝까지 맞.. 더보기
그날그날의 방식이 마음에 들어서, 그린그린으로 물든 여행에 거의 유일한 해변 여기가 한국인가 싶을 정도로 컬쳐 쇼크를 주었던 월정리 OOO 게스트하우스. 도착하자마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인도여행 이후 거의 10년 만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상쇄시킬 정도로 매력적인 사람들이 있었고 재미도 있었다. 뚜벅이 여행은 고됐고 체력 좋은 나는 쉽게 지쳤지만 매일 저녁 식탁 앞에 모여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던지며 술을 마시는 시간이 기다려진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월정리를 떠난 뒤에도 계속 생각이 났다. 서른을 넘긴 여행객들은 이름 대신 별명을 지어 불렀고 나는 직업과 나이 같은 속성 대신 별명을 부르는 그날그날의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섹시가이 블루 흰오빠 병신 과학자 부사장님 등으로 불린 사람들이 뒤섞여 밤마다 해변 앞에서 술을 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