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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즐거워

좋아서하는밴드 2014 보신음악회

좋아서하는밴드 2014 보신음악회

음악이 몸보신될까?

 

 

 

 

어느 날 동생이 물었습니다. '좋아밴' 콘서트에 가겠느냐고요. 저는 바로 대답하는 대신 언제인지 되물었습니다. 초복 즈음. 그런데 답변과 함께 풀어놓는 동생의 이야기는 꽤 흥미로웠답니다. '좋아서 하는 밴드'는 매년 복날 맞이 콘서트를 하고 있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진행된다는 것이에요. 하지만 사실 '보신음악회'라는 컨셉보다는 '좋아서 하는 밴드'가 '좋아서' 한 예매에 가까웠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더운 여름을 상상하기 어려운 날이었으니까요. '보신'이 필요치 않았던 그날. 생김새부터 말투, 성격, 취향까지 너무나 다른 우리 자매의 조금 특별한 몸보신은 그렇게도 조금 많이 일찍, 우연히 시작됐습니다.

 

 

몸보신 준비

 

 

 

 

우연히 계획한 우리의 몸보신. 하지만 꽤 철저하게 준비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티켓 오픈 당일. 동생과 저는 앞자리를 사수하기 위해 예매할 수 있는 기기를 총동원했답니다. 스마트폰, 노트북, 데스트탑까지. 각자의 아이디로 접속해 수강신청하듯, 앞자리를 맡았죠. 결제 실패와 접속 에러는 처음부터 생각한 적이 없었기에 예상치 못한 방해물로 완전한 '맨' 앞자리를 사수하는 데까지는 실패했으나, 저로서는 만족스러운 좌석이었어요. 서강대 메리홀 1층 B열 5번과 6번. 무대에서 네번째 줄이었습니다. 밴드의 얼굴 표정, 땀방울까지 다 보이는 가까운 거리였죠. 물론 좋아서 하는 밴드의 조준호를 이상형이라 노래 불렀던 동생은 에러만 안 났어도 더 앞자리를 살 수 있었는데, 처음엔 아쉽다고, 곧 안타깝다고, 그러더니 아깝고, 분하다며, 끝없는 돌림 노래를 불렀습니다.

 

저요? 티켓 예매에도 선방했으니 준비 끝, 이라고 생각했죠. 초복까지는 한참 뒤의 일이니까요. 하지만 막상 '좋아서 하는 밴드'의 노래를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답니다. 어떻게 몇 백 곡을 넣고 다니는 스마트폰에 좋아서 하는 밴드의 노래가 단 한 곡도 없었을까요. 동생은 콘서트 가서 노래 한 곡도 따라부르지 못하는 일이 없게 좀 들어두라고 핀잔 아닌 핀잔을 주었답니다. 그때부터 저는 지하철 안에서, 버스에서, 헬스장에서, 그리고 잠자려고 누운 침대 위에서 즐겨듣기 아니 '미리듣기'를 시작했습니다.

 

'변치 않을 것 같던 우리의 사랑은 입김처럼 흩어지고 쉽게 잊을 것 같던 기억들은 이제 추억이 되었'다는 '네가 오던 밤''10분이 늦어 이별하는 세상', 낯익은 그인줄 알았으나 착각이었다는 '0.4'가 저는 특별하게 들렸습니다. 왠지 간절한 듯한 밴드의 노래를 열심히 듣다보니 어느새 여름이 되었습니다. 여름이 오는 동안, 동생과 저는 이런 저런 일들이 연이어 터져 몸도 마음도 돌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몸보신 D-DAY

 

 

 

 

까만 무대, 드디어 좋아서 하는 밴드가 등장했습니다. 조준호, 안복진, 손현이 좌측부터 차례로 앉아 인사 없이 곧바로 노래가 시작되었죠. 첫곡이 무슨 곡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저는 저도 모르게 설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마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노래부르던 안복진님의 싱그러운 원피스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복날을 맞아 더운 여름 몸보신이 되는 음악을 들려드리고 싶다는 조준호의 인사말에도, 오늘 하루 종일 개드립을 칠 예정이라는 손현의 정말 개드립에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크게 세 곡씩 묶어서 노래를 불렀고, 노래가 끝나면 가볍게 대화를 나누는 식으로 진행이 되었는데요. 공연장 입구에서 복날 기운나는 음식을 써달라던 앙케이트 판을 읽는 시간도 있었고, 복날마다 닭 잡아 원기 보충하는 사람들에게 전쟁을 선포하기 위해 나온 닭대표도 있었고요. (집에 와 포스터를 보니 말 그대로 전쟁 THE WAR(더워) 였네요.)

 

무엇보다 '더위를 이기는 특별한 방법'이 소개되었답니다. 안복진님의 체력을 높여주는 스윙댄스, 손현의 셀프스킨십 강의. 그래도 역시 기억에 남는 건 세 명의 멤버가 각자 한 명씩 관객을 무대 위로 불러 바로 옆에 앉혀 두고 부른 '썸'이 아니었나 싶어요. 조준호와 손현은 노래 부르면서 스킨십으로 더위 해소까지 하고요.

 

손현의 '얼굴 빨개지는 아이' 단독무대는 정말 유쾌했고요. '얼굴 빨개지는 아이' 부르면서 '얼굴 빨개진' 손현님. 시크하게 보이려 이미지 관리했지만 뜨거운 반응에 들뜬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지신듯. 하이-파이브 한다고 2층까지 뛰어 올라갔다오고요. 그래도 끊임없이 관객이랑 같이 하려는게 좋았어요.

 

저는 아무래도 조준호님의 단독무대가 기억에 많이 남았습니다. 평상 위에서 먹는 고기가 참 맛있었던, 그리고 비가 오면 그 빗소리가 음악이 되었던, 노래 부르고 사랑을 나누고 고민했던, 사소하고 소중한 이야기가 있는 '옥탑방에서'와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무력해보이는 어느 밤을 술로 달래는 '취해나보겠어요'가 너무 좋았습니다. MP3로 들을 때는 그렇게까지 와닿지는 않았었는데, 실제로 무대에서 조준호님의 목소리로 들으니 암전된 곳에서 꼭 가사처럼 영화를 보는 기분까지 들었답니다. 왠지 아무 것도 모르지만, 그 상황과 생활을 알 것도 같은 기분도 들고요.

 

'굿바이, 스타'를 들었던 순간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굿바이, 레닌'의 패러디인 줄로만 알았던 저는 그때까지 사실 이 노래에 별 감흥이 없었답니다. 그러나 10만 킬로를 달렸던 스타렉스를 폐차했던 '좋아서 하는 밴드'의 실제 이야기를 다룬 노래라는 동생 설명을 들은 뒤, 그 노래를 잘 듣고 싶어졌고, 잘 이해하고 싶어졌답니다. 실제 무대에서 직접 부르는 노래와 함께 어디론가 쉼 없이 달리는 영상을 보니 10만 킬로의 시간을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왠지 뭉클했습니다.

 

 

 

 

'너에게 흔들리고 있어' '뽀뽀' '감정의 이름' 'Lilly' '젬베의 노래' '천체사진' 그리고 떼창으로 부른 '샤워를 하지요'까지. 많은 노래를 '직접' 들을 수 있어 무지 행복했습니다.

 

앵콜곡으로 부른 '달을 녹이네'를 들을 때는 정말 흰눈이 펑펑 내리는 12월의 추운 겨울 어느 날을 상상해보기도 하고요. 입김으로 온기를 불어넣는 상상!

 

 

그래서 몸보신은?

 

 

'보신'을 생각하지 않고 갔던 음악회. 생각보다 저는 '마음'이 건강해지고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음악을 들을 때마다 뮤지션들의 시간을 생각한다는 김중혁 작가의 말처럼, 저는 '좋아서 하는 밴드'의 음악을 듣는 내내 가사를 쓰고, 곡을 만들고, 연주를 하고, 녹음을 했을 밴드의 시간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제가 옥탑방에도, 스타렉스 안에도, 눈 내리는 겨울 길가에도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답니다. 그리고 10만 킬로의 시간을 잠시나마 생각했습니다. 힘들어 하다가 결국 또 다시 꿈을 꾸었던 시간들도요. 그리고는 다시 무대에서 노래하는 세 명을 보면서 마음이 굉장히 따뜻했답니다. 등받이에 기댄 등에 땀이 날 정도로 더운데도, 더우면서도 덥지 않고 따뜻했습니다. 마음이 좋았습니다 :)

 

 

"

더위를 이기는 방법이요?

몸을 덥게 만들어주는 거예요.

내부 온도가 높아지면 상대적으로 외부 온도가 낮아

덜 덥게 느껴지거든요.

이열치열 알죠?

"

 

 

손현님의 우스갯소리가 유난히 기억에 많이 남았던 오늘, 저는 마음의 온도를 높여 이 더운 여름을 잘 이겨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다시 겨울이 오면, 겨울에 '좋아서 하는 밴드'의 공연을 꼭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도요. '좋아서 하는 밴드' 노래로 여름에 더위를 잊을 수 있다면, 겨울엔 반대로 추위도 잊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음악이 몸보신, 마음보신 정말 되네요. 좋은 사람과 함께 갈 그 공연이 올 때까지 저는 저를 위해 또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오늘 이 마음으로 말이에요.

 

 

    

 

 

 

    

 

 

기다려서 조준호, 손현, 안복진 세 분께 모두 싸인도 받았답니당 :)

 

앞으로 계속 흥하시길!

내년에 또 만나요 ♡

안복진님이 직접 곡을 썼다는

'내가 첫번째였음 좋겠어' 들으면서

마무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