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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in

[바르셀로나] 몬세라트 수도원 가는 길은 역시 쉽지 않아

 

 

[바르셀로나] 몬세라트 수도원 가는 길은 역시 쉽지 않아

 

여전히 이야기는 바르셀로나 디자인 공간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밤을 앞둔 그날 아침, 저는 바르셀로나 근교에 있는 몬세라트 수도원을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역시 예정에 없던 일정이었지만, 지난 밤 숙소에 머물고 있던 사람들이 때마침 강력 추천을 해주었고, 공간 사장님이 얘기해주셨던 어린이 성가대가 몹시 궁금했던 터라 고민하지 않고 일정을 잡았습니다.

 

도미토리에서 함께 머물고 있던 한 언니가 그날의 동행자였죠. 단출하게 짐을 꾸려 스페인에 온 그녀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과외 선생님이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큰 결심 끝에 여행 티켓을 끊었던 저와는 달리 그녀는 과외와 과외 사이에 자발적으로 선택한 휴가를 온 것이었습니다. 쉽지 않은 결정으로 스페인을 왔음에도 즉흥적이었고 무계획적이었고, 게다가 게을렀던 저와는 달리 그녀는 부지런했습니다. 한 달이 넘는 일정이었음에도 하루하루를 아주 바쁘고 꽉 채워 소진(그럴리 없겠지만 마치 미션을 수행하는 것처럼 하루를 소진하고 있다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하고 있었습니다. 바르셀로나에 거의 일주일을 머물렀던 저보다 고작 삼일째 머무르고 있는 그녀가 더 많은 곳을 보았다는 사실이, 그래서 걱정되었습니다. 걱정할 필요 없었지만,

 

그녀와의 하루 동행이 왠지 모르게 순탄치 않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일찍 일어난 그녀와 달리, 역시 늦게 일어난 저 때문에 에스파냐 역에서 몬세라트로 가는 기차를 놓치고 거의 한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어린이 성가대'를 못 보면 어떡하냐고 물었습니다. 진짜 못 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시간이 흐를수록 확신으로 바뀌었고, 그러는 동안 그녀의 얼굴빛도 달라졌습니다.

 

어색한 분위기가 싫어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잔뜩 늘어놓았습니다. 이를테면 이미 그만둔 회사와 상사 욕, 그리고 퇴사를 결심하기까지 내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일했는지와 같은 확인할 길 없는 말들을 말입니다. 말하면서 후회했지만, 그리고 그렇게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제가 부끄러워 숨고 싶기도 했지만 말하면서 정리가 되는 순간들도 아주 드물게 있었습니다.

 

그녀는 내가 그만두기 전 흥미롭게 일했던 인터뷰 이야기들을 듣고는,

 

"넌 참 감동이 쉽구나."

 

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몬세라트 수도원에 도착했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에스파냐 역에서 다시 기차를 갈아타고 달린 지 거의 한 시간 반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것이 왠지 모르게 안도감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정면에 보이는 수도원 건물 1층에 있는 식당에서 간단히 끼니를 먼저 해결했습니다. 마치 한국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만나는 식당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사람은 많았고 어떻게 메뉴를 주문해야 할지 몰라 굉장히 고민하다 음식을 골랐던 것 같은데 한참 시간이 지난 지금은 무얼 먹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걸 보니 정말 '속'을 채워야 한다는 목적에만 충실했던 것 같네요.

 

그렇게 수도원을 오르는 길이 어디쯤에선가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올랐고, 우리는 그들을 따라 걸었습니다. 걷는 동안 그녀는 이스라엘 집단농장이었던 '키부츠'에서 생활했던 과거를 들려주었습니다. 공동생산하는 지역 공동체였는데, 그녀는 그곳에서 노동력을 제공하고 머무를 수 있는 공간과 용돈을 받았습니다. 언론사를 준비하던 당시 키부츠를 외웠던 기억이 나 새삼 반가웠고, 전세계에서 다양한 국적인들이 모여 공동의 농장에서 일하는 이야기가 흥미로웠습니다. 그녀에 대해 잘 모르는 저는 키부츠라는 단어 하나에 그녀에 대한 호감이 급상승했습니다.

 

 

수도원을 가는 길은 가파르지는 않았지만 높았고, 길었고, 끝이 없었습니다. 오르고 올라도 끝이 없었고, 오를수록 날은 점점 더워 이제는 언제까지 올라만 가야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올라갈수록 사람들은 점점 작아져만 갔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수도 급격하게 줄어들었습니다.

 

열심히 사진 찍는 저와는 달리 그녀는 사진도 거의 찍지 않았고, 특히 본인의 모습이 나오는 사진은 더더욱 찍지 않아 저 또한 저의 모습을 찍는 횟수를 줄였습니다. 이따금 그녀는 사진을 찍어줄까 물었지만 번번이 부탁만 하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아 그냥 사진찍기를 거의 포기하고 걷기에 전념했습니다.

 

여전히 길을 계속 되었고,

 

 

스페인은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 열정의 국가라고 들었는데, 제 여행은 왜 자꾸만 '경건'해지는 것인지 의아했습니다. 그럼에도 계속 걸었습니다. 늦게 일어난 저 때문에, 그래서 기차를 놓친 탓에 이미 어린이 성가대의 합창 공연은 지나가버렸기 때문입니다.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인 하모니라고 했는데, 조금 더 서둘러 준비하지 않은 게 뒤늦게 후회가 됐습니다.

 

 

바위 난간 사이에 삐죽이 솟은 나무들을 봐도 어쩐지 고행같았고, 그런 걸 보면서 계속 올라가는 저도 왠지 고행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얼마쯤 올라갔을까요. 저는 애초에 천주교인이 아니었던 터라 예수와 제자들이 수행을 했던 곳에 대해 반드시 가야만 한다는 입장은 아니어서 중도에 내려왔습니다. 올라갔던 길을 다시 돌아서 한참을 내려와야 했습니다. 덥고 지치는 날이었죠.

 

몬세라트 수도원에는 어린이 성가대만큼 유명한 '검은 성모마리아상'이 있었는데요. 그걸 보기 위해 또 다시 두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바르셀로나로 돌아가는 마지막 기차를 타려면 5시인가 6시인가에는 나와야 했던 것 같은데, 그 열차를 타기 전까지 보지 못할까봐 줄을 서서 기다리는 내내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기다린 끝에 마침내 봤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플래시를 터트렸고, 저도 그 가운데에서 사진을 찍고 소원을 빌었습니다. 오래 볼 수 있는 여유는 없었지만 봤으니 이제 홀가분한 마음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됐습니다.

 

기진맥진해진 상태로 기차를 탔지만 스페인 사람들을 구경하는 건 꽤 흥미로운 일이었고, 말이 통하지 않아 오히려 온전히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맞은 편 좌석에 앉은 아저씨가 멋있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전혀 그럴 리 없는 데도 계속 '아인슈타인'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앞 좌석으로는 남자 둘이 앉았는데 왠지 게이 커플이 아니냐는 확인할 수 없는 말들을 동행했던 언니에게 건네며 또 다시 혼자만의 스토리를 만들었습니다. 특히 우리 바로 앞에 앉았던 커플은 정말 한 시간 넘는 이동 시간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었는데요, 놀라운 건 남자와 여자가 서로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았고 확인할 수 없는 우리가 보기에도 둘의 언어가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꽤 즐거워 보여 분명히 만난 지 몇 시간이 되지 않았을 거다, 라며 추측을 해보았습니다. 바로 앞에서 사진 찍는 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서로에게 집중해 있었습니다. 오히려 사진 찍는 저를 나무라는 건 저의 동행자였던 언니였지만 사람들을 관찰하는 일이 흥미로워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고돼고 지쳤던 몬세라트 수도원 가는 길의 피로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행지에서는 사람에 대해 한없이 관대해지는 저였지만, 어쩐지 그날의 일정을 함께 하는 동안 역시 낯선 누군가와, 특히 많이 다른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마도 수도원을 가는 길이었기 때문에 그랬으리라 넘겨 짚어봅니다.

 

 몬세라트 수도원 가는 방법

(그러나 다소 허술합니다.)

 

1. 먼저 에스파냐 역에서 내립니다.

 

2. 에스파냐 역에서 'FGC'표시를 따라 기차타는 곳으로 간 다음 자판기에서 티켓을 구입합니다.

 

3. Montserrat combined ticket을 구입해야 합니다.

 

4. 다음 단계에서 산악열차와 케이블카를 선택하면 되는데, 보통 한국인들은 산악 열차를 많이 탄다고 해요.

Rack railway(산약열차)를 타면 Monistrol de M 역에서 내려야 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