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진짜 될 수 있을까

세 번의 설문조사가 남긴 것들①

 

 

 

홍보대행사를 다니면서 좋은 건,

할 수 있는 모든 것(까지는 아니겠지만)

상상 이상의 업무들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좋은 의미로!

 

오늘은 설문조사에 관한 이야기(혹은 개인적 정리)를 해보려고 한다.

 

2014년부터 지금까지 맡고 있는 클라이언트 홍보 아이템 개발을 위해 총 3번의 설문조사를 진행했었다. 무려 세 번이나! 3번의 설문 모두 가설 설정부터 설문 기획, 설문 대상 선정, 설문 결과 데이터 분석, 데이터 분석을 통한 보도자료 작성과 이미지 디자인을 모두 직접 했었다.

 

마케팅팀에서 진행하고 분석한 데이터로 보도자료만 썼다면 홍보대행사 AE로서는 굉장히 편했을 것이다. 회사 내부에서도 그런 눈치가 없지 않았다. 기획료도 받지 않으면서 너무 품을 많이 들이는 것 아니냐는 무언의 눈총을 받아야 했다. 솔직히 3번이나 설문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 안 했던 것도 아니다. 설문 자체를 설계하는 것도 어려웠고, 가설을 세워두고 결과를 유추해내더라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변수가 생겼기 때문이다. 더구나 수 백 명의 데이터를 일일이 파악하고, 분석하는 것 자체가 시간이 많이 걸렸다. 게다가 배포일정은 픽스해두고, 진행하다 보니 항상 시간에 쫓겼다.

 

그래도 다만 언젠가 이 경험이 실제 마케팅팀(혹은 홍보팀)에 가게 된다면 도움이 되겠지, 라는 생각으로 하고 버텼던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솔직히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설문조사를 왜 했을까? 설문조사를 대체 왜 할까?

첫째, 기사 가치(기사 커버리지)를 높일 수 있다. 둘째, 트렌드를 파악하기에도 용이하기 때문이다. 만약 마케팅 담당자라면 설문조사를 통해 실제 소비자들의 심리와 반응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마케팅 전략을 세우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것이기에.

 

어쨌든 그래서, 나의 첫 번째 설문 진행을 얘기하기 위해

2014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첫 번째 설문은 '캐디' 대상 설문. 캐디는 골프장의 패션 트렌드 변화를 가장 빠르게 캐치할 수 있으며, 설문을 진행하는 동안 우리 브랜드에 대한 인지도를 높여 향후 자연스레 스피커 역할을 할수도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2014년 10월 기획 당시 최초 주제는 '캐디가 말하는 골프장 핫 아이템'이었다.

 

그러나 시작과 동시에 난항에 부딪혔다. 캐디를 섭외하는데 예상외로 시간이 걸렸고, 시간이 자꾸 밀리다 보니 골프 시즌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열심히 진행한 설문이더라도 배포했을 때 겨울이라면 시기적으로 기사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는 판단 하에 다음해 골프 시즌에 맞춰 진행키고 일정을 미뤘다.

 

설문 문항 만들기

그 사이 나는 가설을 세우고, 가설을 수정하고, 가설에 맞춰 설문지를 만들고 다시 수정하는 작업을 계속 해야 했다. 사실 설문을 기획하면서 부끄럽게도 그때서야 가설을 먼저 세워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설문이 뭔지도 모르고 질문지부터 만들어 보여드렸던 나를, 인내심을 갖고 가르쳐 주신 나의 상사님께 급 감사를...

 

 

다시 한번 폴더를 열어봐도 설문을 참 오랫동안 많이도 고쳤다. 2014년 11월부터 2015년 3월까지....장장 4개월에 걸쳐 묻고 다시 쓰고, 고쳤다. 그렇게 설문을 만들고 클라이언트 컨펌이 되자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설문에 응할 대상자 찾아야지?

보도자료에 쓸 때나 자료 분석에 형평성을 두기 위해 캐디 섭외 부터 지역권역을 나눴다. 수도권, 강원권, 충청권, 전라권, 경상권 5개 지역으로 나눠 골프장 무작위 섭외에 들어갔다. 캐디 섭외에는 개인적으로 두 분에게 큰 빚을 졌었다. 첫번째는 나의 첫번째 레슨 프로님, 두번째는 아버지의 은퇴 전 직장 후배이자 아저씨. 무턱대고 주변 캐디들 소개 시켜달라고 해서 경기, 수도권 지역 골프장 캐디들을 연결 받았다. 아저씨께는 뜬금없이 연락해 다짜고짜 회사 계열사 리조트 골프장 캐디들 설문할 수 있도록 섭외해달라고.... 다시 생각해도 죄송한 것 투성이..

 

그렇게 수도권을 해결하고 나니 충청, 강원, 전라, 경상권이 문제였다. 주변 지인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라운딩 다니는 사람들에게 물어 캐디 연락처를 알아보려고 했으나 역시 쉽지 않았다. 한 명만 해결하면 연결, 연결해서 단체로 묶을 수 있을 듯 싶었는데 여의치 않았다.

 

결국 정공법으로 가야했다. 네이버에 골프장을 검색해두고 지역별로 무작정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마음이 급했고, 손은 더 급했다. 어떻게든 성사시켜 설문을 진행해야 했다. 데드라인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다급하디 다급한 순간에 골프장 섭외하는 거 하나도 안 도와준 팀원들에게 서운한 감정도 잊을려야 잊을 수 없구나.

 

 

당시 파일을 열어 보니 2월 초부터 수소문을 시작했던 것 같다. 처음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으나, 차차 전화하다보니 경기과에서 캐디들을 배치하고 관리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어버버-거리다가 점차 수월하게 의도를 설명했다. 물론 대기업 계열사 골프장 대부분이 어렵다는 거절 의사를 전해왔고, 섭외도 계속 지체됐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틈틈이 인스타그램에 #캐디, #골프장 등을 검색하며 찾고 또 찾았다. 놀라운 사실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캐디들을 찾았고, 그렇게 컨텍했던 몇몇 사람들에게 연락이 왔다는 것이었다. 특히 라비에벨CC에서 일하시던 모 캐디분은 직접 지인들을 섭외해주셨고, 덕분에 강원지역은 어렵지 않게 인원을 채울 수 있었다. 아무런 대가 없이 이렇게 도움을 받을 수 있구나, 라는 무한 감동....도 잠시...

 

설문 배포 URL 컨펌되나 안 되나

지역을 다 채우고 카톡, 문자로 설문 URL을 전송하기로 했다. 그걸 만들기 위해 구글독스를 이용했었는데, 처음 만드느라 시간도 많이 걸리고 무엇보다도 모바일로 봤을 때 최적화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끝도 없이 수정을 해야했다.

 

 

별 것 아닌 것 같이 보여도 이미지 만드는데만 몇 번의 수정이 있었고, 다 만든 설문 문항도 모바일로 봤을 때 문장이 두 줄로 끊긴다거나 보기 예쁘지 않다는 점까지 감안해 수정,수정,수정이 연이어졌다.

 

설문 배포 URL이 과연 컨펌되는 것일지 의문이 들었던 순간, 드디어 OK! 컨펌이 됐다.

 

그렇게 고생 고생을 거쳐 드디어 2015년 4월 설문이 진행됐다. 설문 URL을 배포하고, 일부 지역은 설문지를 메일로 보내 팩스로 결과물을 받았다. 설문 답변을 받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던 기억이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답변을 구글로 확인했다.

 

끝인 줄 알았지?

설문만 하면 끝일 줄 알았으나, 데이터 분석이 남았다.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설문 답변이 나왔는지 확인해야했다. 다행히 구체적으로 가설을 세워두고 문항도 가설에 맞춰 설계했기 때문에 예상했던 대로 답변이 나왔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데이터에 맞춰 보도자료를 쓰기 시작했다. 보도자료도 역시 8번 정도 수정을 거쳐 최종안이 나왔다. 물론 내 보도자료가 엉망이었기에 상사에게 덤으로 욕을 들어가며 울며 썼던 기억이다.

 

보도자료에 맞춰 이미지 작업도 해야 했다. 사실 기사 가치를 높일 수 있는 헤드라인이 있었으나, 내부 사정 상 그대로 갈 수 없어 톤을 낮췄고, 그러다 보니 이미지를 만드는 데도 약간의 제약이 따랐다.

 

패션의 Good 포인트와 Bad 포인트를 비교하기 위해 이미지도 만들었다. 예시 스타일로 만든 보라색 옷은 집에서 청남방과 바지는 회사 옆팀을 무작정 사무실 회의실에 붙잡아 두고 촬영했다.  

 

 

 

모든 게 준비되고도 걱정이었던 이유

이렇게 모든 자료와 이미지를 세팅해두고도 걱정이 됐던 건 배포시기가 좋지 않았던 까닭이다. 진행하던 일정은 예상했겠지만 다소 밀려, 4월 말에 최종 릴리즈됐다. 하필이면 그 날 기자간담회가 있었고, 대부분 5월 초 연휴가 껴 쉬는 기자들이 많았다. 뿌리고도 그날 3건 정도 나왔었나?

 

고생,고생해서 만든 자료가 물거품이 될까 난 솔직히 똥줄이 탔다. 그때 회사에서 과장이 '노력해도 잘 안나올 수 있다는 걸 고객사도 알아야 한다'고 했었나. 그게 참 너무 서운하게 들렸다. 당시 나는 고작 AE였고,(대리도 아니던 시절) 그럼에도 노력해서 이 정도했으면 거들어 도와주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었기 때문에.

 

그래도 시간이 갈수록 하나, 둘씩 기사가 올라왔었다. 다음날은 나도 어쩔 수 없는 연휴일이었다. 그리고 나도 부산에 놀러갔기 때문에 잊고 있었다. 그때 엄 오빠가 SBS에 단신으로라도 써주겠다고 연락이 왔었는데 무지무지 고마웠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연합에서 쓴 기사가 당시 페이스북 인사이트(?)에 오늘의 뉴스로 올라오며 좋아요가 약 2,500건 정도로 노출되면서 회자가 많이 됐다.

 

그래서 그 결과 다행히 웃으며 고객사 보고를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설문에 응해준 고마운 캐디분들께 하나하나 손 편지를 썼다. 사실 손 편지는 누구도 시키지 않았으나, 나는 정말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대가 없이 설문에 응해준 이분들이 아니었음 나는 아직도 답보상태였을지 모를 일이었기에. 다만 회의실에서 편지쓰고 박스에 답는 나를 보면서 과장님은 왜 이렇게 시간을 많이 할애 하느냐고 했다. 보기에 따라 그럴 수 있겠지만, 나는 브랜드 담당자로서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다. 아직도. 지금도.

 

 

 

그 처음이자 마지막 일줄 알았던 설문은

다시 하지 않을 줄 알았던 설문은 그로부터 딱 1년 뒤 2016년 2월 다시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