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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산들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아빠에 관해서는 100번을 말해도 100번 모두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의 테마는 아빠의 청춘 수능이 끝나고 한없이 잉여롭던 그 해가 저물어가던 어느 날이었다. 공부하라는 흔한 잔소리 한 번 한적 없던 아빠는 그날 꽤 진지하게 재수를 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나는 아빠 입에서 나온 말이 동생과 싸우지 말라는 게 아니고 엄마 말씀을 잘 들으라는 것도 아니어서 몹시 놀랐다. 재수는 그 당시 내게는 생명을 부여받지 못한 단어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 아빠 또한 당연히 그러하리라 생각했다. 물론 아빠는 더 권하지 않았고 나는 그 해 12월 31일 모 대학의 합격 전화를 받고 진짜 대학생이 되었다. 술 마시느라 집에 안 들어오고 늦잠 자느라 수업에 못 들어가고 정작 제대로 학교에 간 날조차 자.. 더보기
입도 뻥끗하기 싫은 날이 있어 1년 반이라는 짧은 기간, 그러나 녹록지 않았던 첫 직장생활을 그만두고는 거의 1년을 백수로 지냈습니다. 홍보가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자체 검열을 거치고 나니 짧은 이력으로 갈 곳은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의 백수생활은 버텼다는 표현이 실은 더 정확했죠. 보도자료를 작성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최소한의 경제력만으로 생활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마음 속으로 정해둔 데드라인이 다가오자, 저는 다시 홍보대행사에 이력서를 넣었습니다. 대부분 자격요건으로 '적극적이고 활달한 성격', '언제든 기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사람'을 요구했죠. 저는 제 여러 성격들 중에서 자격요건에 가장 부합한 성격을 최대한 끌어내어 자기소개서를 작성했습니다. 그렇게.. 더보기
[바르셀로나] 몬세라트 수도원 가는 길은 역시 쉽지 않아 [바르셀로나] 몬세라트 수도원 가는 길은 역시 쉽지 않아 여전히 이야기는 바르셀로나 디자인 공간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밤을 앞둔 그날 아침, 저는 바르셀로나 근교에 있는 몬세라트 수도원을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역시 예정에 없던 일정이었지만, 지난 밤 숙소에 머물고 있던 사람들이 때마침 강력 추천을 해주었고, 공간 사장님이 얘기해주셨던 어린이 성가대가 몹시 궁금했던 터라 고민하지 않고 일정을 잡았습니다. 도미토리에서 함께 머물고 있던 한 언니가 그날의 동행자였죠. 단출하게 짐을 꾸려 스페인에 온 그녀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과외 선생님이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큰 결심 끝에 여행 티켓을 끊었던 저와는 달리 그녀는 과외와 과외 사이에 자발적으로 선택한 휴가를 온 것이었습니다. 쉽지 않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