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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제주도가 아닌 서울에서도 끝까지 근사했으면 좋겠다.

 

 

키 낮은 돌담길을 한참 지나야 다다르는 그곳의 (유일한) 단점은 골목을 꽤 오래 헤매야 찾을 수 있는 위치라기보다는 쉽게 적응되지 않는 남녀공용 화장실이었다. 공용보다는 청결이라고 말하는 편이 사실 더 적확한 표현이겠다.

 

예민한과는 거리가 먼 나조차 문 앞에서 크게 쉼호흡을 해야하는, 거창한 시간이 필요했다. 번번이 눈을 질끔 감았던 내가 고민 없이 사용했던 때는 흥겹게 취했던 저녁 때뿐이었다.

 

그 순간마다

 

"성공한 인생이란 적어도 변기에 앉아서 보낸 시간보다는, 사랑한 시간이 더 많은 인생이며 변기에 앉은 자신의 엉덩이가 낸 소리보다는, 더 크게 더 많이 '사랑해'를 외쳐야 한다."

 

고 말한 박민규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을 떠올렸다. 어떻게 기억이 난 건지 알 수 없지만 그 구절을 곱씹으며 군말 없이(화장실 좀 어떻게 하라고 불평을 하긴 했지만) 잘 견딘 내가 꽤 근사하다고도 생각했다. 어차피 변기에 앉아서 보낼 시간은 잠시뿐이니까.

 

나를 잘 이해하면서도 누구 못지 않게 이해 못하는 나의 오래된 친구가 한참동안이나 내 얘기를 들어주었으며 다 듣더니 그게 나의 장점이라고 얘기해주었으니 그걸로 충분하가도 또 생각했다. 유일하지 않은 상황마저도 유일하게 기억하는 병일지 모를 내 오랜 버릇도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내가

제주도가 아닌 서울에서도 끝까지 근사했으면 좋겠다.

 

미처 열어 보이지 못한 마음을

잘 모르면서도 이해하고 싶은 핑계들을

 

만들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