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감정

미련 없습니다.

@나도 주인공이 되고 싶다, 나도 합격 목걸이 받고 싶다

 

 

면접을 봤다. 늦은 봄부터 초여름까지 세 차례.

 

첫번째 기회는 아주 우연히 찾아왔다. 한창 설문조사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무렵, 자주 연락하던 기자가 모 기업 경력직 공고를 알려줬던 것이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보내놓고 일이 바빠 잊고 있다가 한주가 끝나는 금요일 오후 5시 40분경 면접 안내 전화를 받았다. 예상 못한 전화에 마음이 들떴다.

 

나, 탈출하는 건가?

 

대행사를 벗어나(탈출해) 인하우스(기업 홍보팀) 가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커져가고 있던 차에 기뻤다. 준비되지 않았지만, 지금 맡고 있는 클라이언트와 관련이 있기에 아주 희망이 없지는 않다고도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은 스스로 생명력을 가진 것 마냥 부풀었다.

 

두번째 기회도 학교 선배와의 술자리에서 우연히 마련됐다. 신사동에서 삼겹살을 먹다가 문득 선배가 IT 스타트업 홍보팀 자리를 소개해줬다. 선배가 말하는 자리라면 무조건 믿고 볼만했기에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고, 그래서 불안하고 걱정이 됐다.

 

세번째 기회는 앞서 두번과 달리 스스로 찾았다. 일단 두번의 기회를 놓치고 나자 마음이 조급해졌기 때문이다. 상사는 좀 더 있으라고 했지만, 스스로 찾고, 찾아 나아가고 싶다는 열망이 컸던 시기였다. 내 가치와 내 위치를 증명해내고 싶었다.

 

 

 

 

그러나 내 가치를 증명하는 자리마다

'기자에 미련이 없냐'는 똑같은 질문이 꼬리표처럼 따라왔다.

 

아쉬움이 없냐는 질문이 아니라, 미련이 없냐는 질문이라 다소 속이 상했다. 아쉬움이 없냐는 질문에는 얼마든지 '그렇다'고 답할 수 있다. 오랫동안 품었던 꿈에 아쉬움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련은 다르다. 현재 이곳에 발을 담고도 다른곳에 대한 마음을 깨끗이 정리하지 못한 마음이 있다면, 그 마음을 갖고도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었을까. 

 

나는

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더 이상 기자가 된 친구 혹은 선후배가 부럽지 않다. 진짜 부러운 것은 어떤 분야에서든 현재 있는 자리에서 능력을 발휘하고 어려운 상황을 돌파하며 해결책을 찾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최선을 다하고, 정말 잘해내고 싶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후미진 골목길을 한참 지나 보석 같은 바를 발견했을 때 진짜 여행이 시작되는 것, 오기사(ogisa)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백퍼센트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문득 문득 짜릿함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었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사소할지라도 내 스스로 성취와 보람을 느꼈던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마음을 담지 않으면, 내가 먼저 발을 푹 담그지 않으면, 그 어떤 일이라도 계속 내 주변에서 겉돌기만 한다. 회사가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섣불리 단정하기 전에 나는 이만큼 일을 하고 싶다, 할 의욕이 있다는 의지를 먼저 충분히 드러내고 할 수 있음을 증명하도록 유도하고 싶다.

 

나는 일을 사랑해, 라고 말하지 않으면 일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 임경선 에세이 <태도에 관하여> 중

'내가 현재 살고 있지 않은 인생' 편 발췌

 

그리고 이제 나는 기자가 되었든 되지 않았든 시간이 바닥에 깔려 있었던 그 터널을 함께 지나온 선후배와 지금 좋아하는 것들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일상을 누리는 것으로도 충분히 괜찮다고 생각한다.

 

 

@2013년 겨울

 

@2014년 겨울

 

@2015년 겨울

 

@너무나 애정하는 전갈자리 소울메이트, 설

 

 

기자에 미련이 없냐는 질문에 만족스럽지 않은 대답을 하고, 며칠 뒤 불합격 문자를 받은 뒤로 내내 찜찜했던 마음을 달래다가 문득 어떤 기억이 났다. 첫 직장 면접에서도 나는 똑같은 질문을 받았었다.

 

그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당락을 좌우하진 않았겠으나 어쨌든 나는 최종 합격 연락을 받았다.

 

"광고인 박웅현 씨도 원래 꿈은 광고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아주 오랫동안 기자 준비를 했었죠. 최종 면접에서 탈락하고 그는 광고대행사에 들어가 3년을 '벙어리'처럼 지냈다고 합니다. 주변으로부터 너는 광고AE가 맞지 않는다고 소리도 들었다고 하죠. 하지만 결국 해냅니다. 그는 기자를 준비하며 신문을 읽고 글을 쓰고, 토론하고, 수없이 고민했던 경험의 기록이 '좋은' 광고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광고든 홍보든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기자를 준비했던 시간이 홍보 일을 하는데 분명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탈출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중간 경력 공백기를 제외하고 햇수로 4년차가 되었다. 일이 고될 때가 많지만 요즘엔 재미도 자주(종종) 느낀다. 한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도 힘든데 불특정 다수의 마음을 얻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잘해보고 싶다.

 

언젠가 다시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좀 더 긍정적인 마음과 확신에 찬 눈빛으로 답하고 싶다.

미.련.없.습.니.다.

 

 

 

  "나는 인생을 살면서 반드시 자신이 좋아하는 일 혹은 자신이 꿈꾸던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강박은 버려도 좋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서 살고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충분히 인생은 살 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하고 싶었고 시도나 노력도 해보았지만 뜻대로 풀리지 않아서 지금은 이 일을 한다.

그리고 이 일에선 내가 좋아하는 요소도 분명히 몇 가지가 있다, 는 것도 존중받아야 할 삶의 방식이다.

 

  현재 내가 '해야 하는 일' 안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면 그것도 괜찮은 시작이자 꿈을 추구하는 실질적인 과정이다. 궁극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실제로 하게 되었을 때 충족감을 느끼려면 그 일은 '내가 제법 잘 하는 일'이어야 지속 가능해지니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현실적으로 무리할 수밖에 없다.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어떻게 흘러흘러 이렇게 되었다, 는 말은 대개가 거짓이다. 무리하는 것이 되레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원래 하던 대로 하고 있다면 내게는 그 어떤 변화도 일어날 수 없다.

 

  내가 무리한 만큼 앞으로 전진하고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서 인생의 기회가 열리는 것이 현실이다."

 

 

- 임경선 에세이 <태도에 관하여> 중

'나를 쉽게 위로하지 않을 것' 일부 발췌'

'감정' 카테고리의 다른 글

Thank you  (0) 2017.07.16
포기를 모르는 남자, 연상호 감독  (0) 2016.08.29
4월 취미는 축하  (0) 2016.05.17
3월(March)을 마치는 일상의 기록  (0) 2016.03.27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0) 2016.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