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반이라는 짧은 기간, 그러나 녹록지 않았던 첫 직장생활을 그만두고는 거의 1년을 백수로 지냈습니다. 홍보가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자체 검열을 거치고 나니 짧은 이력으로 갈 곳은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의 백수생활은 버텼다는 표현이 실은 더 정확했죠. 보도자료를 작성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최소한의 경제력만으로 생활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마음 속으로 정해둔 데드라인이 다가오자, 저는 다시 홍보대행사에 이력서를 넣었습니다. 대부분 자격요건으로 '적극적이고 활달한 성격', '언제든 기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사람'을 요구했죠. 저는 제 여러 성격들 중에서 자격요건에 가장 부합한 성격을 최대한 끌어내어 자기소개서를 작성했습니다. 그렇게 지금의 회사와 만나게 됐고, 저는 다시 AE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일이 절박했던 만큼 재미도 있었습니다.
기회가 오기를 간절히 바랐으나 매번 어긋났던 첫 직장과 달리, 이곳에서는 오자마자 많은 업무와 롤들이 주어졌습니다. 물론 실수하지 않기 위해 수차례 확인해야했고, 일찍 나오고 늦게 가는 피곤한 날들이 계속됐지만 실제로 재미도 있었습니다. 내가 담당자라고 말할 수 있는 기자미팅이 떨렸지만, 책임감도 느껴졌고요.
선배와 함께 나갔으나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 있었던 코흘리개 AE였을 때와 달리, 진짜 담당자가 돼 브랜드를 소개하고 관계를 형성해가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습니다. 물론 제 한 마디 한 마디가 기사화 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제대로 말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상당했지만, 운 좋게 '썰'을 잘 풀면 기사를 통해 브랜드를 알릴 수 있으니 자연스레 적극적인 성격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새로운 관계의 확장이 펼쳐졌습니다. 매일 혹은 이틀에 한번 꼴로 미팅이 잡혔고, 미팅이 없는 날에는 전화를 걸어 브랜드를 알렸습니다. 낮맥주를 하거나 낮막걸리를 하는 부담스러운 자리를 끝마치고 나면, 해냈다는 생각에 스스로 뿌듯했습니다.
겸손하지만 과하지 않아야 했고, 비즈니스 미팅이지만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난 자리인만큼 어느 정도 개인적 이야기를 풀어놓아야 관계에도 진전이, 진정성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매순간 테이블 위에서 배웠습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 날들도 물론
있었습니다.
어디서 홍보대행사 나부랭이가 연락을 하느냐는 불호령이 떨어지는 날도 있었고, 어쩔 수 없는 일들에 특별한 변명이나 핑곗거리를 댈 수 없어 온몸으로 무너지는 둑을 막아내듯 그저 방패막이가 되어야만 하는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자괴감이 들었고, 속이 상했습니다. 제게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일들이 상대방에게는 그저 당신의 사소한 사정에 불과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예상치 못한 순간마다 발생했고, 할 말을 삼켜야만 하는 순간도 있었으며, 더 이상 제 전화를 받지 않는 기자들에게도 에너지를 쏟다 보니 진심으로 입도 뻥끗하기 싫은 날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테이블 위에서 나눴던 이야기를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그런 소울리스한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아 매순간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물론 스탠바이와 큐사인이 떨어지는 그 순간에 충실하고, 다시 온에어 불이 꺼지면 원래대로 돌아와 싹 잊고 지워버리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직업 특성 상, 그것이 편하고 유용한 방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에게는 맞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힘들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사람을 사귀는 방식은 한 가지가 아니듯 저는 저에게 맞는 방식이 따로 있다고 여전히 생각합니다.
그때는 들어주지 않는 사람에게 참 많이 분하고 억울했지만
부탁하는 사람 입장에 당연한 이유가 있듯,
등 돌리는 사람에게도 그만의 명분과 이유가 있다고 이제는 생각합니다.
사람의 감정은 이성의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걸 깨달으면서 조금 내려놓을 수 있게 됐고, 조급해거나 전전긍긍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상황을 볼 수 있는 여유도 아주 조금은 생겼습니다. 여전히 예상치 못한 순간에 울린 벨소리에 심호흡을 해야 하고, 긴장한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더욱 긴장하지만 말입니다.
또한 운 좋게도 배려해주는 좋은 기자들을 시의적절한 순간마다 만나왔었기에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지치는 날에는 약속시간보다 먼저 도착해 화장실에서 주문을 걸었습니다. 모든 미팅이 술술 풀렸던 건 아니었지만 꽤 도움이 되었습니다.
누구나 수고로웠던 한 해였을 테지만
어색한 자리를 회피하지 않고 견뎌 온 저에게
실은 소심하고 낯가림 심한 저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수고했다,고요
2016년에도 피하지 말고 계속해보겠다,고요
* 입도 뻥끗하기 싫은 날, 위로가 되었던 글
언제부터인가 나는 소심한 사람들의 괴력을 눈치채게 되었다. 대범한 사람들이 세계를 들썩들썩 움직이는 동안 소심한 사람들은 주섬주섬 세상을 해석한다.
살아남기 위해 예민해질 도리밖에 없는 초식 동물처럼 그들은 누가 힘을 가졌는지 계절이 언제쯤 변하는지 민첩하고 정확하게 읽어낸다. 미미한 자극에 큰 충격을 받고 사소한 현상에 노심초사하는 그들의 인생은 남보다 느리게 흐른다.
타고난 관찰자이며 기록자인 그들의 소심한 복수는 '이야기'다. 그들은 더디게 살기 때문에 삶을 사는 동시에 재구성한다.
목소리 큰 당신이 휘어잡았다고 생각하는 어젯밤 술자리에서 벽지처럼 있는 듯 없는 듯 듣기만 하던 동료가 있었던가. 그가 잠들기 전 떠올린 스토리 속에서 당신은 놀림감이었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세계의 평형을 유지하는 메커니즘 중 하나라고 판명돼도 나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
<김혜리가 만난 사람, 그녀에게 말하다 中 김병욱 피디 인터뷰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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