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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in

[바르셀로나] 로맨티스트, 휴머니스트 건축가 가우디

 

 

 

[바르셀로나] 로맨티스트, 그리고 휴머니스트 천재건축가 가우디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랍니다. 저도, 역시 가우디 투어를 신청했고, 날이 밝자마자 건축물을 보러 길을 나섰답니다. 운 좋은 하루였던 그날의 기억을 펼쳐볼까요?

 

 

 

 

숙소에 관한 이야기는 이전 포스팅에서 얘기했던 적이 있듯, 저는 바르셀로나에서 내내 디자인공간에 머물렀습니다. 원래 2일 정도 머무르고 다른 곳을 갈 수도 있겠거니(무계획이었으니, 뭐 이것도 달라질 수 있지만) 생각했는데 왠걸요. 일단 숙소 위치가 중심가에 있어 이동하기가 넘넘 좋았고, 사장 언니도, 함께 머무르는 사람들도 매력적이라 떠날 수가 없었답니다.

 

여자 5인실을 나오면 제일 먼저 보이던 모습이에요. 아침이 되면 이곳에서 흥겨운 스페인 음악이 흘러나왔고, 졸린 눈을 부비고 하나, 둘씩 이곳에 모여 앉아 시리얼을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오늘의 일정을 나눴답니다.

 

물론 말 한 마디 없이 시리얼만 먹었던 첫날과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즐거운 수다와 이따금 작별의 말이 오갔습니다. 다른 한인민박처럼 아침마다 한식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마음대로 골라먹을 수 있는 각종 시리얼과 빵, 주스와 우유, 요플레, 커피 이런 것들도 나름의 매력이 있었기에- 저는 이곳이 좋았답니다. 제가 하룻밤을 자고 일어난 아침, 이 사진을 찍었더니 "누가 주방 사진도 찍나봐~"라고 얘기하던 기억도, 쓰다보니 생각이 나네요.

 

 

 

 

바르셀로나에서는 정말 신기하게도 늘 운이 좋았습니다.

 

첫번째 행운은 가우디 투어를 '무료'로 했던 것! 바르셀로나 현지에서 여행사를 하는 분이 숙소 사장언니에게 시범 가이드를 할 친구가 있는데 전문적이지 않더라도 공짜로 듣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데려오라고 했던 모양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가 오갈 당시, 저는 아직 한국에 있었죠. 그런데 우연히 제 친구의 친구가 저보다 먼저 스페인 여행을 시작했다는 걸 알게 됐고, 심지어 제가 예약했던 디자인 공간에 묵고 있었던 터라 저까지 신청자 명단에 넣어주었답니다.

 

사장 언니는 귀여운 남자 가이드가 떨리는 마음으로 첫 손님을 맞는 것이니, 실수하더라도 너그러이 봐달라는 말을 했기에 큰 기대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귀에 쏙쏙 들어오도록 재밌게 설명을 해주었답니다. 알고 보니 대학생이었고, 워킹홀리데이를 가는 것보다 이렇게 현지 가이드를 하는게 보고 배우는 게 더 많을 것 같다는 생각에 스페인으로 휘리릭 넘어왔다고 했었는데, 지금은 다시 한국에 돌아와있겠지요? 아마도? 제 친구의 친구와 제 동생뻘이었던 가이드 동생의 뒷모습이 마치 커플처럼 닮아 재밌어 찍어두었어요. 지나고 나면 모든 게 추억이 되니까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성 가족 성당)을 실제로 보니, 탄성이 절로 나왔어요. 엄청난 규모와 높이에 놀라고, 현재까지 지어진 것이 완성 건축물의 1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죠.

 

대장장이였던 아버지는 아들 가우디를 자신과 같은 직업을 갖지 않도록 고등교육을 받도록 키웠답니다. 하지만 정작 가우디는 당시 건축학 흐름에 맞지 않게 곡선형 건축을 고집하고, 틀에 벗어난 모험을 자주해 학교에서는 문제아로 낙인찍히고 말았다고 해요. 교수들은 자신의 수업에 가우디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고, 낙제점까지 주었다고 하는데.

 

당시 총장은 가우디를 졸업시키면서, 자신이 졸업장을 준 것이 천재인지, 바보인지 모르겠다는 말까지 했었답니다. 지금 생각하면 엄청난 실언이죠?

 

삐뚤어진 건축 설계로 이미 업계에서는 왕따로 통했고, 빈곤했고, 인정받지 못했던 가우디. 결국 전차에 치여 객사를 했을 때, 아무도 그가 가우디인 줄 몰랐다는 비운의 이야기까지. 모두 그 귀여운(?) 남자 가이드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이랍니다.

 

 

 

 

조금 더 가까이에서...(DSLR 안가져간걸 두고두고 후회했.......어요)

 

건축물을 잘 보면 꼭 열매 같은 모양들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두눈 크게 뜨고, 숨은그림찾기! 가우디는 지역에서 나는 과일, 특산물을 건축의 소재로 활용했다고 해요. 실제로 돌을 쌓아올려 만든 탑 꼭대기 부분에 지역 과일을 볼 수 있었답니다. 그 지역에서 사는 동식물을 같이 쌓아올리기도 하고, 건축 재료들 역시 지역에서 나는 것을 활용함으로써, 항상 지역과의 조화를 염두에 두었다는 이야기가 꽤 흥미롭게 다가왔답니다.

 

자연 그대로, 본연을 지키고 싶은 마음을 담아 만든 성당은 가우디가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환경, 자연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었는지 짐작하게 만든답니다.

 

그래도 기억에 가장 남는 건, 역시 전 교황에 얽힌 이야기! 전 교황이 죽기 전,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서 미사 한 번 봐야 하지 않겠냐는 말을 했었다고 해요. 그 말이 떨어지자 마자 야근, 주말 근무 없기로 유명한 스페인에서 야근, 주말 풀 근무를 해가며 착공에 박차를 가했답니다. 그래서? 실제로 성당에서 미사가 단 한 번 이루어졌다네요.

 

이후 더욱 더 착공에 가속도가 붙었다고 하는데, 가우디 100주년인 2026년에 맞춰 성당을 완공하려는 기세로 보인다는 얘기도, 저는 가이드의 말을 하나도 잊지 않겠다는 듯 정말 열심히 들었답니다.

 

사진이 실제로 보았을 때만큼의 감동과 감탄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는게 참 많이 아쉽네요.

 

 

  

 

 

엄청난 돌기둥과 내부 장식을 보고 있으면 그저 감탄만 나올 뿐. 스페인은 열정의 나라라고 들었는데, 성가족 성당에 있기 때문인지 열정보다는 끝없이- 경건해지기만 했답니다.

 

 

 

 

가우디의 또 다른 대표 건축물 '까사 바트요'예요. 동화 속에 나올 법한 아름답고 화려한 외관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보면 어떤 사연이 있을까 상상해보는 재미가 있답니다.

 

바트요 씨를 위해 만든 집인데, 설계부터 한 건 아니었고 가우디는 리모델링만 했다고 해요. 꼭대기를 가만히 쳐다보면서 꼭 뱀을 얹어놓은 것 같다, 고 생각했는데 뱀이 맞았답니다. 젊은 여성을 재물로 바쳐 악귀를 물리쳐야 했던 당시 상황과 스페인 전래동화를 모티브로 했다는데. 이런 이야기는 우리 고전에만 있는 건 아닌가 봐요. 또 계속 쳐다보면 사람의 척추뼈가 생각나는 것 같지 않나요?

 

까사 바트요에는 가우디의 가치관이 투영돼 있답니다. 인체에 관심이 많았던 자신의 관심사를 건축물에 담아보려고 했던 것. 그래서 꼭대기 척추뼈 말고도 잘 보면 보이는 게 여럿 있어요. 사람 얼굴을 옮겨놓은 듯한 테라스와 사람 뼈를 빗댄 창문 틀.

 

이렇게 다시 보면 아름다움과 괴기스러움이 동시에 느껴지죠.

 

 

 

 

까사 밀라. 저는 가우디 건축물 중에 까사 밀라가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바람과 공기의 흐름까지 염두에 두고 설계한 외관, 해조류를 연상하게 하는 창문 테라스, 태양열을 활용해 옥상에 만들었다는 최초의 세탁터에는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움을 최우선시했던 가우디의 철학이 묻어납니다.

 

물론 제가 흥미로웠던 것은 밀라 부인을 흠모했을 것 같은 숨겨진 암호였어요. 까사 밀라 제일 위층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니셜 'M'이 새겨져 있어요. 사진으로는 잘 안 보이네요, 어쩌죠. 학계는 이 M을 두고 해석이 분분했다고 해요. 밀라의 M을 딴 것이란 것이 처음의 주장, 아니다, 마리아의 'M'을 딴 것이라는 것이 이에 대한 반박이었죠. 증거는 물결치는 테두리에 숨겨져 있었습니다. 짧은 단어들이 띠를 두른 듯 새겨져 있었는데 그 단어를 모두 조합해보면 성모 마리아 주기도문이 완성된다는 것이었죠.

 

그러다 또 다른 학설이 등장합니다. 사실 주기도문은 페이크 같은 것이고, 'M' 위에 새겨진 장미꽃을 잘 보아야 한다는 것이에요. 이 장미가 바로 밀라 부인을 흠모했던 결정적 단서라는 것!

 

저는 단순히 연대기적 설명이 아닌, 이런 생생한 설명을 해주는 가이드가 너무 좋아서 연신 엄지를 치켜세웠답니다.

 

 

 

 

사실 가우디 건축물에는 종교적 상징물이 있기 마련입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성가족 성당)도 그랬고요. 그런데 까사 밀라는 왜 안보이나 했더니, 일화가 있었답니다.

 

밀라는 마리아 상처럼 종교적 조각을 하는 가우디 건축 방침에 반대를 했었다고 해요. 당시 종교적 탄압이 심했는데, 괜히 건축물에 종교적 의미를 넣었다가 화를 부를 수 있다는 게 이유였죠. 그러나 가우디는 포기할 수 없었고, 결국 80퍼센트나 공정이 이루어졌는데도 타협을 할 수 없어 차라리 안하겠다며 그만둬버렸답니다. 하지만 막상 그만두니 자신이 80퍼센트나 했는데 마무리를 하지 않았다고 건축 설계자가 못되는 것이 억울한 생각이 들어 다시 20퍼센트도 하기로 마음을 먹게 됩니다.

 

그러면 가우디는 종교적 의미를 넣는 건 포기한 걸까요.

 

천장에 보면 돔 같은 것이 보이는데요. 그 가운데로 바라보면 반대편 너머 성당이 보인답니다. 밀라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신앙의 의미를 이렇게라도 심어두려 했던 것이죠.

 

그런데 막대한 돈을 들여 건축한 까사 밀라가 분양에는 실패하고 맙니다. 결국 어마어마한 부자였던 밀라 가문은 빚더미에 올라 완전히 망하고, 현재 까사 밀라의 소유주는 건축물 바로 앞에 있던 은행이라고 합니다. 은행 입장에서는 보존도 좋지만 내부 구조를 변형해 수익을 내고 싶은데 최초 분양을 받았던 몇 가구가 현재도 살고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요.

 

나중에 사진을 보여주면서 엄마에게 얘기해주었더니, 어떻게 그걸 다 기억하고 있느냐며 신기해했어요. 그런데 정말 기억하려 애쓰지 않아도 기억될 만큼 인상이 아주 강렬했답니다. 내부를 보지 않았던 게 아쉬웠고, 옥상까지 올라가보지 않은 것이 다소 미련이 남긴 해요.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있기를, 있겠죠?

 

 

 

 

가우디의 건축물 '구엘 공원'. 이제 투어의 일정도 거의 끝이 나고 있어요. 왠지 아쉽 :)

 

구엘 공원은 자연스러움과 휴머니즘의 결정체! 새의 쉼터까지도 배려하여 설계했던 가우디의 마음을 생각하며 이토록 자연스러운 공원이 참으로 잘 보존되고 있는 모습에 감동했어요. 여유롭고 느긋하고, 그제서야 저 또한 긴장됐던 마음을 내려놓고 비로소 스페인을 즐기기 시작했던 기억입니다.

 

 

 

구엘 공원의 조각과 건축물에서는 그 어떤 인위적 분위기도 느낄 수 없었어요. 온전히 있는 그대로, 그리고 마음에 내키는 대로, 자연스럽게 각자 즐길 수 있었습니다. 어떤 이는 노래를 불렀고, 어떤 이는 거리 광대처럼 서프라이즈 쇼를 펼쳤고, 그리고 저희와 같은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공원 아무 곳에나 걸터앉아 바람을 쐬고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 구멍들이 바로 새가 쉴 수 있도록 만들었던 쉼터인데요, 정말 어떻게 이렇게 돌탑을 쌓아올렸던 건지, 그저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할 수가 없네요.

 

 

 


저도 드디어 남들처럼 인증샷도 남기고, 본격 즐기기에 돌입! 날은 상당히 더웠지만, 한국이 아니어서 좋았던 기억입니다. 사람들이 있었고, 그래서 외롭지 않았고. 사람들이 있었지만, 홀로 즐길 시간과 여유도 충분히 주어져서 만끽할 수도 있었습니다.

 

구엘 공원의 또 다른 보물찾기!

 

 

 

 

헨델과 그레텔 혹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같은 동화에 나올 법한 마을. 놀이공원에서 자주보았던 것 같은 신기한 건축물 또한 구엘공원에서 빼놓지 말고 보아야 할 목록! 선명한 타일 색상과 타일 조각을 보는 것도 아마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가우디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찾아보려는 관광객들로, 어딜 가든 항상 붐볐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소란스럽거나 번잡스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 많던 사람들은 그저 숨죽여 가우디의 건축물을 감상했습니다. 마치 말문이 막힌 듯이요. 가우디 투어는 여기에 바로 매력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천재 가우디의 생각과 고민을 조금이라도 느껴보는 것에 말이에요. 하루 뿐이었지만 저는 가우디 투어를 하는 내내, 그가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난과 질책을 받는 시간 속에서도 변함없이 사람들을 사랑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헌신적이었던 사랑은 대상을 가리지 않았고요.

 

그래서 그는 정말 진정 로맨티스트이자 휴머니스트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건축학도가 아닌 제가 보기에도 그의 건축물은 정말 대단했고, 그 대단한 걸작이 이 바르셀로나를 먹여 살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그가 더더욱 대단해보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일화들을 너무도 훌륭하게 설명해주는 가이드를 만날 수 있고, 심지어 그 설명을 무료로 들을 수 있었던 저는 정말이지 운 좋은 여자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바르셀로나를 떠나서도, 바르셀로나가 생각났고, 그리웠습니다. 한국에서 일상을 사는 지금도, 문득문득 생각이 나- 언젠가 바르셀로나를 다시 한 번 가볼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