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이 터져 대대적으로 소와 돼지들을 집단 폐사했던 게 3년 전의 일이다. 살아있는 가축을 생매장해서라도 구제역 확산을 막아 더 이상 농가 피해가 없도록 하겠다는 게 정부 방침이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죽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돼지를 봤고, 결국 죽은 돼지들이 부패해 2차 환경오염 문제가 발생했다는 방송 보도를 봤다.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심각했고, 불편했다. 구제역 발병 원인과 피해 대책, 향후 해결 방안에 대한 후속 보도가 쏟아졌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도록 구제역이 해결되진 못했다. 구제역보다 구제역을 대하는 우리의 불안감이 먼저 해결된 게 아닌가 싶다. 점점 더 둔감해지는 찰나, 정유정 작가의 소설 <28>이 출간됐다.
작가는 <28>을 통해 잊고 있거나 외면해왔던 불편한 진실을 픽션이지만 언젠가 일어날 현재처럼 너무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알래스카에서 개썰매를 타다 부상으로 한국에 와 수의사를 하는 서재형과 재형을 취재하는 기자 윤주가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주된 축이다. 눈이 충혈되고 발병되자마자 갑작스럽게 죽어가는 사람들과 그로 인해 점점 아수라장이 되어가는 사회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28>의 무대는 원인 모를 병으로 인해 점점 불안과 공포로 뒤덮인다. 예상하다시피 재형과 윤주는 병의 근원지를 쏟아가다 개로부터 전염된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 전염병은 무서운 속도로 퍼져나가고 최후에는 전염병이 확산된 지역의 출입을 통제하고, 벗어나는 사람을 막기 위해 군 병력이 투입되기에 이른다.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으려는 사람 사이의 대치는 팽팽하고, 이성이 실종된 자리에는 야생과 동물적 본능만이 남게 된다.
모든 것이 파괴되는 순간을 이토록 잔인하게 묘사하면서 작가가 말하고 싶은 바는 무엇일까. 작가는 가족이자 친구였던 반려견이 맹수처럼 변해 사람을 물어뜯어 죽이는 믿을 수 없는 현실 앞에 너무도 무력한 인간을 그린다. 칠흑 같은 어둠, 혼돈의 시간 속에 가족이 붕괴되고 정부가 보호해주리라는 믿음이 무너지는 과정을 지켜보면 인간이 자연의 지배자라는 생각에 반성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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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를 잡은 남녀노소는 바깥세상을 원망하거나, 정부를 성토하거나, 현 대통령을 뽑은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버리고 싶다는 후회의 심정을 토로했다.
"나는 죽고 싶지 않습니다. 살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살고 싶지 않습니까."
누군가 "나도 살고 싶다."고 외쳤다. 그것이 선창이 됐다. 사람들은 주먹을 흔들며 '떼창'으로 "살고 싶다."고
외쳤다.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일어나 가슴을 치며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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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총성이 사라졌다. 총성과 관련된 것들도 완전히 사라졌거나 사라지는 중이다. 완전히 사라진 것은 개다. 화양 곳곳을 돌아다닌 지난 며칠 동안, 단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산기슭이나 들판을 나도는 개조차도 없었다. 총을 든 자들은 사라지는 중이다. 시청을 제외한 주요 관공사 앞 초소들이 대부분 비었다. 빈 검문소도 부쩍 늘었다. 어젠 통금 단속반도 나타나지 않았다. 총소리는 도시 외곽이나 산골짜기에서만 요란하다. 그 많던 군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봉쇄선 밖으로 물러갔을까? 아닐 것이다. 우선 '이동'이라 할 만한 대규모 움직임이 없었다. 취재한 바로, 사라진 군인들이 몰려 있는 곳은 화양의료원이다. 그들 역시 죽거나, 죽어가는 중이고. 외부에서 병력이 수혈되는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이대로 가면 화양이 무정부 도시가 되는 데는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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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봉쇄선 병력은 점점 늘어나고 강화되는 분위기다. 다른 도시로 연결되는 순환도로, 국도, 터널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산골짜기까지 중화기로 무장된 군인들이 이중 삼중 방어선을 치고 있다고 했다. 밤이 되면 정찰 헬기가 서치라이트를 켜고 도시 외곽을 쉴 새 없이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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