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지상의 노래

 

 

 

“잊지 않겠습니다.”

 

지난 봄, 소중한 생명들을 허망하게 저 세상으로 보내고, 우리가 한 말이다. 들뜬 마음으로 기다렸을 수학여행을 시작도 하지 못한 채 그들은 떠났다. 잊지 않겠다는 것은 생의 마지막을 차가운 바다에서 보내고 만 그들을 달래는 말이었다. 그들의 가족을 위로하는 말이고, 위로하면서 다짐한 말이고, 분노의 말이었다. 세월호 참사는 모두에게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무엇보다도 옳지 못한 어른들의 잘못으로 일어난 인재였다는 점에서 나를 비롯하여 참사를 지켜본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막지 못했다’는 일종의 죄의식을 남겼다. 잊지 않겠다는 말에는 그 죄의식이 투영돼 있다.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 무색할 만큼 쉽게 잊어버리고 만 세월호 참사가 다시 떠오른 건 최근 읽은 책 『지상의 노래』 때문이다. 이승우 작가의 소설 『지상의 노래』를 관통하는 큰 줄기가 바로 이 ‘죄의식’이다. 소설은 사적이든 공적이든 어쩔 수 없이 혹은 의도적으로 죄를 짓게 된 인물들이(실제로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죄를 지은 것처럼 죄책감을 느낀다는 점에서) 그 죄의식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다. 여기까지만 보면 죄의식과 운명이라는 거대한 무게감이 부담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첫 장을 펼치는 순간,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손에서 책을 놓기 힘들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소설 속 장면이 마치 영화처럼 눈앞에 그려져 다음 이야기를 읽지 않을 수 없고, 몰입에서 빠져나오기 쉽지 않은 이유다.

 

『지상의 노래』에는 여러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여행 작가였던 형을 대신해 책 출간을 마무리 지으면서 천산의 실체를 알게 되는 강상호와 천산의 목격자이자 초소 감시자였던 장,  박정희 정권의 핵심인물이었던 군인 한정효,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짓고 천산에 들어갔다가 뜻하지 않은 일로 천산을 떠나게 되면서 삶 자체가 바뀌어버린 후까지. 소설은 강상호가 형이 유품으로 남긴 글과 사진을 책으로 만들기 위해 직접 보충 취재에 나서며 천산 수도원을 방문하게 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와 함께 수십 년 전 폐허로 변한 곳에서 벽서를 발견한 차동연도 언급되는데, 이 둘은 현재라고 봐도 무방한 동시대인이다. 그러나 소설은 더 풀어내지 않은 채 갑작스럽게 과거로 거슬러 간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지점, 후와 한정효 이야기의 시작인 것이다.

 

후는 해안 시골마을에 사는 십대 소년이다. 그에게는 갓 스무 살이 된 누나 연희가 있다. 친누나는 아니다. 연희는 후의 아버지를 외삼촌이라 부른다. 후는 해안 초소에서 근무하는 박 중위와 친분이 있다. 박 중위가 종종 후를 불러 먹을 것을 줬던 것. 그러나 그의 호의가 사실 누나를 만나기 위한 의도성이 있었음을 알게 된 뒤, 후는 그를 멀리한다. 어쩌면 박 중위가 다른 매개자를 찾았다고 해야 하는 편이 맞다. 박 중위는 그의 적극적인 구애를 부담스러워하고, 거절하는 연희를 만나기 위해 어른의 말을 구사할 줄 아는 후의 아버지를 공략한 것. 처음엔 후의 아버지도 그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그는 제대를 마치면 떠날, 잠시 머무르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 중위는 사람의 마음을, 아니 어른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을 알았다. 가난한 어른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진심이 아니라 확실한 돈임을. 그는 후 아버지의 밀린 외상값을 갚고 허락을 받아낸다.

 

하지만 불행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연희가 박 중위에 대한 마음이 깊어진 순간, 박 중위는 돌변했다. 거부하는 연희를 강제로 범하면서도 그는 떳떳했다. 더 이상 사랑은 아닐지언정,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충분히 지불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지는 속도가 똑같지 않기에 마음이 변하는 속도도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제 막 마음을 열기 시작한 연희로서는 모든 게 당혹스러울 뿐. 결국 연희는 마을을 떠난다. 혼자 남은 후는 누나 연희를 위해 복수를 준비한다. 그의 복수는 실제로 실행에 옮겨졌다. 하지만 후조차도 박 중위를 진짜 죽일 수 있을지는 몰랐기에, 그는 칼로 박 중위를 찌르자마자 겁에 질렸고 후회했다. 후는 쓰러진 박 중위의 생사를 확인하지도 않고, 집으로 돌아왔고, 그 길로 아버지 손에 붙들려 산 속 깊은 곳, 천산으로 오게 된다. 베일에 싸여 있던 천산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천산 공동체는 속세를 떠나 고립된 곳에서 수도생활을 하는 곳이다. 후는 천산에서 자신의 과오를 고백하면서 속죄하는 시간을 갖는다. 성경을 외우고, 절제하고, 금욕하는 생활에도 적응해나간다. 하지만 그 생활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그들은 세상을 잊었지만, 반대로 세상은 어떤 이유에서든 그곳을 잊지 못한 탓이다. 계속된 장기집권체제에 반대하는 자들이 은닉할 만한 곳을 없애야 할 필요가 있던 것. 천산이 바로 그곳이었다. 그럴 이유는 없었다. 가능성도 매우 희박했다. 하지만 전부 죽이지 못한다면 최소한만 남아야했다. 죄 없는 천산 공동체 형제의 반은 쫓겨나야했다. 이게 군인 한정효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후는 그의 의지는 아니었지만, 그때 천산 밖으로 나온다.

 

군인 한정효는 자신에게 내려진 명령을 의심하지 않았다. 명령이 주어지면 생각하지 않고, 해야 했다. 생각이 필요 없었다. 그것이 그가 각하를 모시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늘 확신에 차 있던 그도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임무에 회의감을 갖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죽여야만 얻는 명분은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대의를 설명할 수도, 설득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명령 불복종은 곧 죽음이었다. 한때 권력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한 이는 가장 위험한 인물인 이유다. 가장 위험한 인물이 된 그는 천산에서 고립 생활을 하는 죄인이 된다. 하지만 그마저도 오래가지 못한다.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천산 폐쇄조치가 강행된 것. 한정효는 자신이 천산을 떠나는 대신 천산을 지켜줄 것을 요청하나, 결국 한정효가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천산 폐쇄조치는 진행되고 만다.

 

이제 한정효와 후의 죄의식만 남았다. 천산을 떠난 후는 사라진 연희를 찾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는다. 연희를 찾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고, 그러다 미용기술을 배워 취직도 했다. 심지어 고급 미용실에서 권력에 몸을 바쳐 연희가 숨어 지내는 곳을 알아내는 데에도 성공한다. 하지만 연희를 직접 만난 순간부터 후는 삶의 목적과 방향을 상실한다. 연희가 숨어 지내야만 했던 이유를 알았기 때문이다. 후는 그만의 방법으로 누나를 위한 복수에 성공했다고 생각했겠지만, 복수를 해야만 하는 상황을 일으킨 장본인이 바로 그의 아버지였음을 알고 말았다. 누나를 떠나게 한 원죄가 그에게 있었다.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사실 누나를 사랑했지만, 사랑해서는 안 되고, 사랑하는 것조차 누나에게 죄를 짓는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다.

 

한정효 역시 마찬가지다. 장기집권을 공고히 하는 명령에 따랐던 건, 그것이 정당하지 않은 방법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생각보다는 충성이 요구되는 것이 그의 자리이긴 했다. 다만 또 다시 부정한 방법으로 권력을 이양하는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어느 순간 자각했던 것 같다. 그가 당연하다고 여기고, 충성했던 것이 늘 그의 부인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죽는 순간조차도 남편의 안위를 위해 기도했던 부인을 생각하면서 그는 결국 자신이 부인을 죽게 했다는 죄의식에 갇히고 만다. 게다가 그가 몸을 부대끼고 살았던 천산과 천산의 형제들이 결국 그의 존재 때문에 죽고 말았다는 사실을 알고는 몸서리를 친다.

 

한정효와 후는 죄를 짓게 된 사람들이다. 하지만 억울할 수 있다. 모든 일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났다. 자신들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발생한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인지하지 못했고, 당시 어쩔 수 없었다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죄를 짓지 않은 것이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후의 경우 사모님과의 불륜 관계에서 적극적으로 부정하거나 반대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한정효의 경우 천산을 떠나는 과정에서 방관했다는 점에서 도의적인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다. 죄의식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둘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둘은 정처 없이 길을 떠났고, 길 위에서 공교롭게도 우연히 마주친다. 죽기 직전의 후를 한정효가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길을 떠난 여행자 혹은 순례자가 대개 그러하듯, 둘은 자연스레 헤어진다. 마치 운명의 장난처럼 둘이 다시 마주치게 되는 건, 두 사람 모두 머문 적이 있었던 천산에서다. 속세에서의 목적도, 그 어떤 욕망도 상실한 후가 마지막으로 택한 것이 천산이었는데, 후는 이미 폐허가 되어버린 천산에서 죽어가는 한정효를 보게 된다. 후는 먼저 죽은 형제들을 방마다 차례로 눕히고, 방에 성경을 적은 다음 죽음을 기다리는 그의 마지막 목격자가 된다. 그리고 후는 그가 그랬듯, 제일 마지막 방에서 성경을 적고 생의 마지막을 기다린다. 성경을 적은 벽이 바로 30년 뒤, 강상호와 차동연이 발견하는 그 벽서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은 계속 알리지 않으려고 하고, (왜냐하면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자부심을 버리고 싶지 않으니까.) 또 알리려고 한다. (왜냐하면 그래야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자부심을 확인할 수 있으니까.”   “장과 장의 부하들은 지시받은 일을 했다. 그들은 그 일의 용도와 목적을 이해하지 못했다. 궁금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알려고 하지는 않았다. 언제나 무엇이든 저절로 알게 될 때까지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그들이었다. 무엇이든 저절로 알려질 때까지 알려고 할 권리는 그들에게 없었다. 알려지면 알고 알려지지 않으면 모른 채로 지냈다. 안다고 유리한 것도 없고 모른다고 불리한 것도 없었다. 안다고 불리한 것도 아니고 모른다고 유리한 것도 아니었다. 알든 모르든 달라지는 것이 없으므로 알려지지 않은 것을 알려고 애쓸 이유가 없었다. 알려지는 것을 알지 않으려고 수고할 필요도 없었다. 알려지면 알지 않을 권리 또한 없었으므로 알지 않을 수 없었다.”

 

이승우 작가의 이와 같은 표현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일단 익숙해지자 그러한 설명에 설득되지 않을 수 없었다. 설득될 때까지 빠져나갈 구멍을 차단하고, 설명하는 것이 작가의 표현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종교적 색채가 강함에도 거부감이 들지 않았던 데는 분명 죄의식, 욕망, 사랑, 그리고 정치와 권력이 동시대를 사는 우리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잊지 않겠다’는 말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화석처럼 남아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선연하도록 만드는 것도, 가볍게 날아다녀 공언에 그치게 만드는 것도, 결국 우리에게 달려 있다는 생각이 든다.

 

• 천산 수도원의 벽서(壁書)는 우연한 경로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그 벽서에 의지가 있다면 결코 그렇게 알려지길 원하지 않았을 거라는 뜻에서 하는 말이지만, 그렇게 알려지는 것이 그 벽서의 운명이었다고 말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그 수도원의 벽서가 세상에 알려질, 우연하지 않은 다른 경로를 상정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경로든 우연한 경로일 수밖에 없다. 어떤 우연한 경로도 다른 경로보다 더 우연하거나 덜 우연하다고 말할 수 없다. 어떤 우연도 우연히 일어나지는 않는다. 운명을 만드는 것은 누군가의 욕망이다. 그렇다면 그 벽서가 어떤 경로로든 알려지게 되기를 간절히 원했따고 말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p9)

• 모든 새로운 연인은 언제나 기억 속의 간절한 '그 사람'을 닮는다, 는 것이 아니라 닮았다고 인식된다. 그 인식이 새로운 만남에 의미를 부여하고 적극적인 행동을 유도하는 발판이 된다. '그 사람'과 닮았으므로 이제 사랑해도 된다. 그것을 위해 기속 속의 '그 사람'은 기억 속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사람과 닮은꼴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이 그렇게 억지스럽고 부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 큰눈이 어떻게 작은 눈과 같고, 가는 허리가 어떻게 두꺼운 허리와 닮은꼴일 수 있으며, 까무잡잡한 피부가 어떻게 흰 피부를 연상시킬 수 있느냐고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닮은꼴을 발견한 사람에게 발견되는 그것은 모양이나 색의 근사(近似)가 아니다. 그를 사로잡은, 구체적으로 실체가 느껴지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 실체를 부정할 수 없는, 그 사람 주변의 어떤 기운의 근사이다. (p48)

• 사랑의 열정에 사로잡히는 것이 비합리적인 것처럼 사랑의 열정에서 빠져나오는 것도 비합리적이다. 사랑에 빠지는 것을 주체할 수 없는 것처럼 사랑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것도 조절할 수 없다. 걷잡을 수 없다는 것은 이런 사랑의 본질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런 사랑이 무책임하고 폭력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무슨 일이든 하는 것을 정당화할 때 행사된 폭력이 사랑에서 빠져나왔으므로 이제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정당화하는 자리에서 다시 행사된다. (p107)

• 평생을 들여서 해야 하는 일은 평생에 걸쳐서 해야 한다. 그 일 때문이 아니라 그 삶 때문이다. 일을 위해 삶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위해 일이 있어야 한다. 일이 끝남과 동시에 삶이 끝나기도 한다. 일을 끝냈으므로 삶을 끝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삶을 끝내지 않으려고 일부러 일을 끝내지 않으려 했다는 것은 아니다. (p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