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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도서후기] 올라! 투명한 평화의 땅, 스페인

 

 

 

여행책을 보는 관점에는 두 가지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여행지 정보를 볼 것이냐, 여행지를 다녀온 사람을 볼 것이냐 말이죠. <올라! 투명한 평화의 땅, 스페인>은 단연 후자입니다. 이 책은 스페인을 여행한 '이상은'이라는 사람을 들여다보는 이야기에 가깝답니다. 실제로 이상은은 서두에 이미 이렇게 언급해놨어요.

 

"이 책을 마음의 가이드북 정도로 생각해주세요.

어느 가게가 좋더라, 어느 호텔이 좋더라 하는 책이 아닌,

제 마음의 변화와 느낌을 상세하게 적어 마치 함께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드리려고 애썼답니다.

정보가 담긴 책은 이미 많이 나와 있어, 따로 구입하면 스페인이라는 미궁을 여행할 때 더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저는, 이 책이 '정보'가 아니라 '마음'에 관한 이야기라 좋았습니다.

 

책은 크게 세 파트로 나누어 여행기가 진행됩니다. '길 끝에서 만난 내 마음의 검은 소', '바르셀로나, 태양의 나라', '카메라의 눈으로 태양을 닮은 열정을 비추다'. 고생하고 싶지 않았던 가수 이상은이 스페인이라는 열정의 대륙에 발비딘 순간의 첫 느낌부터 열흘간 거쳐간 도시,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감상을 마치 직접 전해듣는 것처럼 생생하게, 현장감 있게 읽을 수 있답니다.

 

우리가 낯선 곳에 처음 여행을 떠날 때면 마냥 설레기보다는 왠지 모를 불안감을 갖게 되듯 아마 이상은도 그랬던 모양이에요. EBS 세계테마기행 팀의 제안으로 시작된 여행길, 결코 마음이 단순명료하게 정리되어 있지는 않았던 것 같거든요. 시베리아 항공을 나는 비행기 안에서 '차라리 사막에서 낙타와 별 보는 야영을 하는 게 나았던 것은 아닌지' 되묻기도 하고요. 확신에 차지 않은 인간적인 모습이 저는 뭐랄까, 가깝게, 조금 친근하게 느껴졌습니다.

 

마드리드로 들어간 이상은. 그녀는 동행인 친구 '찐빵'과 함께 합니다.

둘은 도착하자마자 거리를 거닐기 시작하는데요.

 

플라멩고 의상을 파는 거리 상점을 보고 느낀 점에는 그녀가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투영돼 있어,

저는 밑줄을 긋고, 저도 모르게 그녀의 말에 귀 기울였습니다.

 

"편의점을 다섯 개는 이어 붙인 듯 커다란 가게의 쇼윈도에는 형형색색의 플라멩고 의상이 진열되어 있다.

무언가 신비스러운 느낌이다. 도트무늬, 꽃무늬, 레이스 숄, 머리에 꽂는 커다란 붉은 꽃. 순간 우리가 입는 옷이 얼마나 상상력이 없고 공장의 노동복 같은지 깨닫는다. 프릴을 한 백 번쯤은 감아 돌려 만든 뭉게구름을 치맛단에 올린 것 같은 초현실감! 보기만 해도 로맨틱하다. 우리의 전통의상도 이렇게 신비로운 모습으로 다른 나라 사람들 눈에 보이겠지. 삶에는 가끔씩 뭉게구름 같은 환상이 필요하다. 어차피 삶 자체가 환상이니까."
   

 

 

. 세비야는 뜨거운 태양보다 더 뜨거운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고 해요. 4월의 축제라는 의미의 '페리아 데 아브릴'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죠. 이곳에서 이상은은 친구, PD, 작가, 여행사 사장님과 모두 서로를 잃어버릴지언정, 온몸을 다해 축제를 즐기기로 합니다. 걱정과 불안으로 시작했던 그녀의 여행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회의 모든 가치가 돈으로만 환산되도록 변해 버린 것. 일견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마치 3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축제의 한가운데에 서보니 뭔가 제대로 알 것도 같다.

이것이 바로 즐거운 인생이라는 것을.

우리가, 세계가 잃은 그 무엇인가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이 나라에 존경심이 생긴다."

 

 

 

 

 

 

세비야 대성당과 히랄다 탑, 김태희가 CF를 찍은 것으로 더 유명한 세비야 광장까지 두루 보고, 이제 드.디.어. 이상은 일행은 바르셀로나에 입성합니다. 가장 가보고 싶었다는 곳, 가우디를 만날 수 있는 가슴 뛰는 도시 말입니다!

 

그녀는 바르셀로나에서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관찰하면서 틈틈이 쉬는 법, 서두르지 않는 법, 천천히 오래도록 인생을 즐기는 법을 배우게 되는 듯 보여요.

 

"스스로를 학대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삶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시간이 인간과 자연에 맞춰져야 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살고 싶다. 그렇게 살아갈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가끔씩 다시 어린아이가 될 수 없다면 우리 인생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마음속의 어린아이가 사라진다면 세상은 얼마나 스산할까?

여행을 와 다시 어린아이가 된다."

 

 

 

비록 타파스를 덤터기를 쓰고 먹는 불운을 겪었지만, 아마 가우디의 건축물과 람블라스 거리와 골목의 아름다움, 삶을 즐기는 스페인 사람들을 만났기에 충분히 상쇄되고도 남을 듯 하고요.

 

론다와 톨레도, 그리고 돈키호테의 배경이 된 곳으로 익히 알려진 캄포 데 크리프타나로 이어지는 여행 후반기를 읽다 보면 가지 않아도 여행을 한 듯한 느낌이 드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작년 이맘때 스페인 여행을 했기에,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녀가 느낀 감상들과 제가 느꼈던 바를 비교해보기도 하고, 일년 전의 추억을 기분좋게 꺼내어 볼 수 있었답니다.

 

다만, 만약 저처럼 스페인을 여행하지 않고 이 책을 처음 접하게 되는 사람들이라면 마드리드에서 들어가 세비야로 거쳐갔던 전반부 이야기가 끝나고, 또 다시 후반부에 등장하는 세비야 이야기로 혼란스러울 수 있겠다, 는 생각도 잠깐 들었습니다.  간혹 글과 매치되지 않는 사진이 배치된 것이 아쉬웠고요. 예를 들어 세비야 이야기를 한창 하면서 바르셀로나 가우디 건축물의 사진이 실리는 식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동감 있는 사진들만 보아도 '아, 스페인 가고 싶네' 라는 생각이 절로 드리라 생각했습니다.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예술가이든 연인이든 자신의 삶을 즐기는 모습이 참 멋지다.

자유롭고 여유롭고 편안하고, 스페인에서는 바로 저런 삶의 모습만 배워 가도 큰 공부를 한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을 즐겨라, 걱정하지 마라, 내일이 되면 다 해결된다 같은, 스페인 사람들의 정신이 참 마음에 든다.

긍정적이고 낙천적이다. 마냐냐(manana)라는 말이 있는데, '내일' '다음에'라는 뜻이다.

꼭 지금 급하게 결정짓지 말고 여유롭게 지내다 보면 꼭 답이 나온다는 철학이 담긴 말이다."

이상은은 스페인에게 배운 모든 점들을 앞으로 살아갈 삶의 힘으로 삼을 것이라면서, 여행기를 마칩니다. 저뿐만 아니라 모두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시간에 쫓겨 살아가지만, 때로 이상은처럼 여행으로, 여행을 가지 못한다면 여행기를 통해서라도 삶에 휴식을, 그래서 다시 힘을 내는 시간이 분명 필요한 것 같아요.

 

일년 전 스페인 여행을 준비하면서 유랑을 많이 들어왔고, 문득 생각이 나 들어왔다가 운좋게 이벤트도 당첨되었네요. 덕분에 책을 읽는 내내 지난 여행을 돌이켜볼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 이 후기는 네이버 카페 유랑(http://cafe.naver.com/firenze)과 출판사의 도서 제공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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