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말, 친구 셋이 동시에 회사를 관뒀다. 홍보, 프로그래머, 영업으로 직종도 제각각이다. 우연히 통보 소식이 겹쳤을 뿐 특별히 시기를 맞췄을 리 없다. 이유가 같을 리는 더더욱 없다. 그러나 결론은 하나. 그들은 지쳤다. 존재의 이유를 찾을 수 없는 소모되는 환경에서 스스로 걸어 나와 쉬고 싶다는 그것뿐이었다. 30대 초반의 우리는, 어쩌면 가장 열심히, 전력투구해야 할 나이. 나는 그들을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잘했다고 했다. 내가 아니어도 그들을 말리고, 반대하는 역할을 할 사람은 충분히 많을 테니까.
수고했다, 잘했다고 말하는 나 역시 사실 관두고 싶었다. 종종, 아니 자주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했다. 특히 한두 달 새 부쩍 '못하겠다'는 단어를 입에 담았다. 그런 생각과 마음을 품고 있으면서도 나는 겉으로 '계속해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했다. 부끄럽게 고백하자면 전작을 읽어본 적 없는 황정은 작가의 <계속해보겠습니다>를 산 것이다. 읽다 보면 정말 계속해보겠다는 마음이 생길 것 같다는 단순한 생각 때문이었다. 짧은 경력 이미 두 번이나 회사를 그만 둔 경험이 있는 내가 세 번째 일을 저지르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계속해보겠습니다>는 자랑할 바 없는 두 자매 소라와 나나의 역사와 일상에 관한 이야기이다. 소설은 그녀들이 태어나기 전의 일인 어머니 애자와 아버지 금주의 연애사로부터 시작된다.
*
어머니의 이름은 애자.
나나와 나는 어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를 때보다도 애자,라고 부를 때가 많다. 애자는 애자라고 불러야 애자답다. 애자의 애는 사랑 애(愛), 그 이름 그대로 사랑으로 가득하고 사랑으로 넘쳤다. 애자가 가장 애자다운 사랑으로 넘쳤던 시절은 아무래도 아버지와 연애하던 때였을 것이다.
*
뭘 하며 걸었어?
라고 내가 물은 적이 있었다.
애자는 한참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이야기했지, 라고 대답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어느 것 하나 기억나는 것은 없지만 끝없이, 끝없이 이야기를 하며 걸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하고도 기억나는 것이 없느냐고 재차 묻자 그건 말이지, 라고 애자는 말했다.
너무 소중하게 너무 열심히 들어서 기억에 남지 않고 몸이 되어버린 거야.
몸?
들었다기보다는 먹은 거야. 기억에도 남지 않을 정도로 남김없이 먹고 마셔서, 일체가 되어버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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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가득할 것 같은 평범한 가정일것 같으나 실은 그 반대다. 아버지 금주는 공장에서 일하다 죽었다. '넷이서 행복해지자며 쉬지도 않고 열심히' 일했던 아버지의 죽음으로 애자는 그만 살아 있지만 살아 있지 않은 상태가 되어 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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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자는 나나와 나에게 그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려준 뒤, 언제고 그런 식으로 중단될 수 있는 것이 인생이라고 덧붙였다. 너희의 아버지는 비참한 죽음을 맞았지만 그가 특별해서 그런 일을 겪은 것은 아니란다.
그게 인생의 본질이란다.
허망하고 그런 것이 인간의 삶이므로 무엇에도 애쓸 필요가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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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모녀는 이사도 했다. 가난했고, 점점 더 가난해졌기 때문이다. 이사 간 곳은 예상하건대 언덕과 비좁은 골목을 지나야 겨우 다다를 수 있는 초라한 단칸방이었을 테다. '죽고 나면 그뿐,이라면서 세계엔 원한이 가득하다' 고 말하는 애자와 살기 시작한 집. 벽을 세워 현관과 화장실을 공유하는 지하 방에서 소라와 나나는 옆집의 나기를 만난다. 가난을 유추할 수 있는 세간, 엄마의 부재로 인해 먹고 돌아서도 배가 고플 한창 나이의 두 자매는 쉰 떡이나 데워 먹으며 겨우 허기를 채운다. 그녀들은 애자가 아닌 나기네 밥을 먹고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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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입 먹자, 하며 그녀는 뜨거운 떡을 아무렇지도 않게 손으로 덥석 떼어 입에 넣었다. 나는 부끄러워 얼굴을 붉혔다. 쉰 것을 먹고 있었다는 것을 들켰다는 게 부끄러웠고, 괜찮지? 하고 물어가며 동생에게 그걸 먹이고 있었다는 게 부끄러웠고, 지금 이 집에 어른이 없다는 게 이상하게 부끄러웠다. 실은 어느 것을 가장 부끄럽게 여겼는지 지금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중략) 나기네 어머니는 떡을 우물우물 먹으며 살풍경한 부엌을 둘러보고, 설탕을 입에 묻히고 있는 나나와 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끝까지 떡을 뱉지 않고 삼킨 뒤, 이 떡의 맛이 좋으니 자기네 밥이랑 바꿔 먹자며 나나와 나를 벽 건너편으로 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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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에도 나이테라는 것이 있다면 나기네 밥을 먹고 자란 시절의 테가 분명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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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고 불안정한 두 자매에게 더욱 위태로운 사건이 생기는데, 동생 나나가 덜컥 임신을 해버린 것이다. '아기를 낳는다는 것은 엄마가 된다는 것이고 엄마가 된다는 것은 애자가 되는 것'이라며 '그러므로 애초에 아기는 만들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해온 소라이기에 무작정 임신해버린 나나가 쉽게 이해되지 않으리라는 것은 예상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일단 나나를 걱정하고 보살펴준다. 그래서 나나는 오히려 화가 난다. 위선자처럼 화내지 않고 챙겨주고 걱정해주는 척하는 소라가 못마땅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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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옛날하고 똑같을 것을 반복할 셈이지.
옛날에 애들이 했던 것처럼, 금주씨 장례식 끝나고 학교로 돌아가서 만난 애들이 언니하고 나한테 그랬던 것처럼, 친절하게 굴려는 거야. 걔들은 있잖아. 친절을 베푼 거야, 불쌍하니까. 불쌍하고 무섭지만 아무튼 자기들 일은 아니니까. 언니하고 나를 멀리서, 멀리서 관찰하면서, 친절하게 대해준 거야. 언니가 나한테 그러고 있어. 싫다고도 하지 않고, 싸우려고도 하지 않고, 지금 그러고 있어. 나는 다 알고 있는데? 성가시면서, 나를 싫다고 생각하면서. 언제나 내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면서 거짓말로 친절하지.
세상에 나 혼자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외로워져.
*
고작 열 살이란 나이에 엄마의 자살 시도를 목격한 나나 역시 뒤틀려 있다. '사랑에 관해서라면 그 정도의 감정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윽고 괜찮아지는 정도. 헤어지더라도 배신을 당하더라도 어느 한쪽이 불시에 사라지더라도 이윽고 괜찮아, 라고 할 수 있는 정도. 그 정도가 좋다는 것이다. 아기가 생기더라도 아기에게든 모세(나나의 남자친구)에게든 사랑의 정도는 그 정도라고 결심해둔 것. 나나는 애자와 같은 형태의 전심전력을 가장 경계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도 당연했다. 열렬히 사랑했던 남자와 여자가 결혼해 가정을 이뤘지만 남자는 일찍 죽고, 남자를 잃어버린 여자는 남자와의 사랑으로 태어난 두 딸에게 책임을 다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정도면 괜찮을 줄 알았던 나나는 결국 그 정도로 괜찮아지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모세씨의 가족을 만나면서 깨닫게 된다. 그래서 그와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홀로 아이를 낳아 키울 작지만 큰 결심을 하며 입에 붙지 않았던 '엄마' 라는 이름도 부르며 태교에 전념한다. 언니 소라, 그리고 옆집 나기 셋이 함께.
*
나나는 이제 나나를 엄마라고 칭하는 일이 늘었습니다. 엄마라고 자칭하는 일에 상당히 익숙해졌습니다. 희한합니다. 나나가 나나를 엄마라고 자칭할 때마다 불편을 느끼는 듯하던 소라도 요즘엔 나나의 배에 손을 올리고, 엄마가 이렇게 융통성 없는 사람이라서 니가 잘 다루어야 겠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것도 어느정도는 희한한 일입니다.
*
애자는 요즘도 밤에 전화를 걸어옵니다.
가엾게도.
애쓰지 마,
의미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덧없어.
아무래도 좋을 일과 아무래도 좋을 것.
목숨이란 하찮게 중단되게 마련이고 죽고 나면 사람의 일생이란 그뿐,이라고 그녀는 말하고 나나는 대체로 동의합니다.
인간이란 덧없고 하찮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사랑스럽다고 나나는 생각합니다.
그 하찮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으니까.
즐거워하거나 슬퍼하거나 하며, 버텨가고 있으니까.
*
한편 생각합니다.
무의미하다는 것은 나쁜 걸까.
소라와 나나와 나기 오라버니와 순자 아주머니와 아기와 애자까지 모두, 세계의 입장에서는 무의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의미에 가까울 정도로 덧없는 존재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소중하지 않은 걸까, 생각해보면 도무지 그렇지는 않은 것입니다.
계속해보겠습니다.
*
덧없고 하찮지만 계속해보겠다는 이토록 허무한 결말이라니,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아빠를 공장 기계에 잃고 엄마마저 세상에 빼앗겨 버린 두 자매에게 계속해보겠다는 다짐은 결코 하찮지 않은 마음이다. 마음을 감추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최대한 방저적인 태도를 고수했던 두 자매가 새 생명을 기다리며 비로소 빗장을 연 것이기 때문이다. 엄마와 아빠를 모두 잃고 만 두 자매의 나이는 고작 초등학생에 불과했고, 이후로도 삶은 크게 나아지거나 나아간 적 없었을 테니.
이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나 역시 그게 무의미할지언정 일단은 계속해보겠다는 마음의 동력은 분명히 얻었다. 여름에 기다리는 휴가만큼 계속해볼 수 있는 의지와 돌파력이 분명 나를 바꾸어줄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부분도 없지 않다. 1월에 계획한 일들은 제때 이뤄지지 않았는데도 어느 덧 2015년의 반이 끝나버렸고, 불타는 마음 같은 것은 있을 리 만무하지만 그래도 생각해본다.
"계속해보겠습니다."
6월, 한강에서 온종일 종종거리며 일한 흔적, 마음의 훈장
* 반디 펜벗 2기로 썼던 6월의 리뷰 다시 읽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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