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엄마의 부엌에서 배운 것들
이 책을 산 건 한 줄의 카피 때문이었다.
"내 생의 절반, 나는 엄마를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했다.
나머지 절반, 나는 엄마가 죽어주기를 바랐다."
엄마가 죽었으면 하는 바람은 결코 입 밖에 내서는 안 될 비밀이었다. 대놓고 욕먹기 십상이다. 상식의 수준을 넘어선다. 그걸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긴박한 상황을 맞닥뜨리는 종군기자가 생명의 중요성을, 가족의 소중함을 몰랐을 리 없다. 그래서 세상 누구보다 사랑했던 엄마를 이제와 왜 죽기를 바라는 것인지 궁금했다.
이 책은 종군기자 맷 매컬레스터가 엄마의 죽음 후에야 엄마의 사랑을 재확인하는 일종의 자기고백서이다. 작가에게 갑자기 찾아온 우울증의 원인은 다름 아닌 엄마의 부재. 작가는 잊고 지내온 과거의 기억, 특히 엄마의 추억을 하나, 둘씩 복원하기 시작한다. 상실감을 회복하는데 엄마의 요리는 아주 적절한 방법이 되는 것. 요리는 엄마가 즐겨 읽었던 '엘리자베스 데이비드'라는 유명 요리사의 책을 활용한다.
"나는 엄마를 되찾아올 한 가지 방도를 찾았다. 당장 내 집 부엌으로 달려가서 엄마의 요리들을 직접 만들어보는 것. 엄마의 돼지갈비, 초콜릿 크리스피, 딸기 아이스크림......기억을 되살리는 데 음식만큼 효과적인 게 또 있을까? 부엌에서 과거의 어떤 맛을 불러내고 조합해가다보면 그 시절로 잠시 들어갈 수 있는 시절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레시피를 통해 요리가 완성되는 동안 작가는 엄마와 있었던 에피소드를 차례로 기억해낸다. 그러나 여전히 작가는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고 초조해 보이는데, 레시피에 의지해 모든 요리를 한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이 만들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을 갖고 있어서다. 그의 아내조차도 부엌을 지키는 그의 모습이 즐거움과는 동떨어져 있으며 요리하는 내내 주변을 고달프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요리는 정복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기억을 되살리고 불러내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나는 과거로부터 좋은 엄마를 기억해내고 불러내기로 했었다. 내 기억 속에 어둡게 자리 잡고 있는 끔찍한 엄마 옆에 엄마다운 엄마의 자리를 마련해주고 싶었다."
물론 기억을 되살리다 보면 술과 담배에 의지해 병들어가던 당시의 엄마를 만나기도 한다. 가족을 위해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음식을 만들어줬지만 엄마는 정신병으로 이성을 잃어가는 경우가 잦아졌다. 불안하고 때로 넋이 나가 있고 기억이 온전하지 못한 엄마 곁에서 사춘기를 보낸 작가는, 그래서 성인이 된 후 줄곧 자신은 스스로 컸다고 생각했지만 기억을 복원하면서 비로소 깨닫는다. 엄마는 병들어가기 전까지 가족을 위해 애썼다는 것. 그리고 엄마가 주고 싶었던 삶의 방식과 지혜도.
"요리책을 덮으라는 엄마의 충고가 부엌이라는 공간을 초월한 메시지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엄마가 진심이었을 거라고 결론지었다. 나는 스스로 요리를 배우고 나와 다른 사람들을 보살피는 법을 배워야 했다. 엄마가 요리를 제대로 하는 법을 배우라했던 건 다름 아닌 그 뜻이었다. 그래야 다른 사람의 말이나 설명에 기대지 않게 될 테니까...... 그래서 나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먹이는 일을 책임질 수 있을 테니까. 내가 엄마의 요리책들을 덮을 수 있을 때, 또한 엄마를 필요로 하는 내 마음의 책을 덮을 때, 그래서 나 스스로 터득한 것에, 내 본능에, 내 창의력에, 위험을 감수하고자 하는 내 의지에만 의존하게 될 때, 오로지 그럴 때만 나는 내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을 테니까......"
작가가 사랑하는 엄마와의 애틋한 기억을 되살리는 동안, 나 역시 깨닫게 됐다.
외박은 절대 안 된다는 엄마의 말에 어깃장 놓듯 나는 밤새워 술을 마셨다. 외박 금지의 빗장은 이렇게 푸는 거라는 선배들의 달콤한 유혹에 이끌렸다. 다음날 아침, 선배들은 당분간 밥 구경은 못할 거라며 편의점에서 빵과 과자를 한 가득 사 가방에 넣어줬다. 덕분에 나는 백만 대군을 이끄는 장군처럼 아주 호기롭게 집에 들어갔다. 내 뻔뻔함에 놀란 엄마는 3일 넘도록 말이 없었고, 나는 몰래 숨겨 온 과지를 먹으며 다짐했다. 절대 엄마 같은 엄마는 되지 말자. 딸의 마음 따위는 몰라주는 답답한 엄마는 되지 않겠다고 말이다.
스무 살 여름에 품은 마음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머리가 다 컸고, 당시 내 세계는 학교에 있었다. 졸업하고도 한참을 백수로 지내다 뒤늦게 취업을 했을 때까지도 내 마음은 참 여전했다. 내가 여전한 만큼 엄마의 고집도 여전했기에 나는 자주 엄마에게 답답함을 느꼈다.
생각이 달라진 건 엄마가 아이돌보미 교사를 하면서부터다. 엄마는 유치원생을 맡았는데 모든 아이들이 엄마를 유달리 좋아했다. 30년 넘게 누구 엄마로만 살다 처음으로 '선생님'이 된 엄마도 각별했다. 날마다 빵과 쿠키를 구웠다. 아동복 코너를 지날 때면 누구누구의 이름을 말하며 한참동안 옷을 쳐다봤다. 어린이날, 생일, 크리스마스 같은 특별한 날엔 꼭 선물을 준비했고, 가족을 초대했다.
혼자 큰 줄 알았던 나는, '칭찬과 애정에 인색한' 엄마를 탓했던 나는, 부끄럽게도 수십 년 만에 다시 육아를 시작한 엄마를 보고 나서야 마음을 몰랐던 건 엄마가 아니라 나였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엄마가 아이들을 대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수십 년 전, 젊은 날의 엄마 역시 내게 그랬을 것이라는 것.
그러니까 엄마는 나에게 이미 충분히 많은 사랑을 줬다는 사실이었다. 이렇게 얕고 단순하고 유치한 마음으로 자라 이제야 깨달은 나는 결코 엄마 같은 엄마는 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도. 그리고 엄마의 마음을 평생 다 알지 못한 채 언젠가 나 또한 작가처럼 엄마와 이별을 해야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리라는 것까지. 만약 가능하다면 다음 생엔 내가 엄마의 엄마가 되어 엄마의 마음을 알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은 아직 비밀에 붙이기로 한다. 지금은 엄마와 함께 사랑할 때이니까.
* 반디 펜벗 2기에 썼던 7월의 리뷰 *
그리고 우리 엄마,
지금 내 나이보다도 젊은 그 시절의 엄마가 정말 예쁘다.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충분히 사랑받았다는 사실만은
26년이나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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