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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in

[바르셀로나] 안 되면 말지

 

 

[바르셀로나] 안 되면 말지

 

바르셀로나에 머무른지 5일째쯤 되는 날, 드디어 그라나다에 갈 교통편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역시 렌페, 부엘링 모두 비쌌습니다. 가지말까 잠깐 고민했었지만 스페인까지 왔는데 알함브라 궁전을 보지 않을 수 없다며, 과감히 티켓팅을 했죠. 바르셀로나 BCN공항에서 그라나다를 가는 국내선 비행기 부엘링은 한국돈 20만 원.

 

그런데 자꾸 일정이 삐걱거렸습니다. 항공편을 예약하고 알함브라 궁전 예약도 끝마친 후 시체스 해변을 갈 계획이었는데, 불안정한 인터넷 서비스로 자꾸 궁전 예약 서버가 다운되는 것입니다. 갑자기 그리고 아주 뒤늦게서야 조바심이 났고, 게으른 제 성격 때문에 벌어진 일들에 누구를 탓할 수도 없어 우울해진 상태였죠.

 

숙소에 같이 묵고 있던 사람들과 일요일마다 열리는 바르셀로나 꿀 시장 구경을 하고 샹그리아 시음을 하며 그때서야 비로소 마음이 풀렸습니다. 그리고 시체스 해변 대신 바르셀로니타 해변을 가기로 했죠.

 

지우메 광장 앞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주문하고 한참을 걸어 해변에 도착했습니다. 선 베드에 누워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시간들이 참 많이 행복했습니다.

 

저녁엔 '운 좋게도' 타파스 투어를 공짜로 하는 호사도 누렸습니다. 게스트하우스 룸메이자 바르셀로니타 해변 동행자였던 승주언니와 이번에도 함께 타파스 투어에 나섰습니다. 타파스 투어를 해주는 가이드의 투어 패키지 론칭 전 프리뷰라고 해두죠. 보른 지구 근처에 있던 작은 타파스 가게에 들어가 마음에 드는 음식을 골라 마셨습니다. 함께 마신 클라라(스파클링 와인과 비슷한 술)가 너무 맛있어 요리하는 동생이 자꾸자꾸 떠올랐습니다.

 

 

 

 

바게트 위에 연어만 올라갔을 뿐인데 어떻게 이렇게 신기한 맛이 나는 걸까요. 동생이 직접 먹고, 느낀다면 더 많이 좋아했을 것 같아 자꾸자꾸 생각이 났습니다. 칼과 불이 오가는 주방이 동생에게는 하루하루의 전쟁터이겠지만, 잠시라도 이 여유를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고요.

 

 

10유로로 뷔페처럼 타파스를 즐기고, 바르셀로나 골목 투어도 했답니다. 매일 다니던 길은 밤 공기과 불빛이 더해져 더욱 운치가 있었습니다. 그 밤의 불빛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길이 과거 로마 제국의 성이었다는 설명을 들을 때는 왠지 마음이 경건해졌고, 그 흔적을 찾아 전 세계인들(특히 서양인들)이 찾아온다는 사실이 신비로웠습니다.

 

 

 

 

 

 

해가 진 골목길은 조용했지만, 빈 골목길 끝에서 누군가 나타날 것만 같아 잠든 도시의 미로를 찾아 헤매는 기분이 즐겁고 설렜습니다.

 

 

차편이 없어 비싼 부엘링을 끊고, 결국 좋다는 시체스 해변도 못간 게 몹시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바르셀로나 숙소에 머문 덕분에 공짜로 타파스 투어를 하게 됐고, 그리고 한국인들은 별로 하지 않는다는 로마 제국의 흔적을 찾아 다니는 성벽 투어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애초에 계획은 변경될 운명이었던 걸까요. 알함브라 궁전을 들어갈 수 있을지 없을지 알지도 못하고 그라나다에 가게 됐지만 못가면 말지, 아니 안 되면 말지, 라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안 되면 그곳에 또 새로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