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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in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드디어 바르셀로나를 떠납니다. 디자인 공간에 머물렀던 많은 여행자들이 각자의 일정에 따라 흩어지기 시작했죠. 이비자, 세비야, 프랑스 파리로 향하는 여행자들을 배웅하고, 저는 그라나다로 갈 준비를 했습니다. 이비자 파티에 끌려 다른 여행자를 따라갈까 수없이 고민했음에도, 그라나다를 택한 단 한 가지 이유는 '알함브라 궁전' 때문이었는데요.

 

수많은 기회들을 흘려보내고 택한 그라나다. 막상 도착하니 무척 외로웠던 기억이 납니다. 바르셀로나와 달리 그라나다는 도시 자체가 작고 조용했습니다. 바르셀로나가 큰 항구도시라면, 그라나다는 문화와 역사가 깊은 소도시 느낌이 물씬 풍겼습니다. 도시 자체의 정취도 그러했지만, 아마도 처음 마주한 바르셀로나에서 너무도 좋은 사람들, 그리고 사람들의 좋은 눈빛에 많이 끌렸던 탓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병률 작가의 말처럼.

 

 

 

 

 

그라나다에서 머물었던 숙소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걸 보면 더더욱. 좋은 부부였지만, 한국인 여행자의 무례한 요구들에 대해 처음 보는 저에게 털어 놓는 걸 보면 그들도 다소 지쳐있던 게 아닌가 싶고요.

 

알함브라 궁전은 이슬람 왕국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기에 많은 기대를 품고 예매를 했습니다. 저는 당일 현장 예매를 했지만, 아마 미리 예매해두면 얼마 정도 절약할 수 있을 거예요.

 

 

 

 

 

 

 

많이 걷고 걸어야 하는 시간들이 계속됩니다. 웅장하고 정교한 건축물과 조형물 앞에 말문이 막히는 경험들도요.

 

 

 

 

 

그라나다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을 만큼 높은 전망대에 오를 수 있습니다. 공들인 궁전이라는 걸 느낄 수 있는 화려하고 섬세한 정원도 많이 구경하고 많이 찍을 수 있답니다.

 

그러나 세계문화유산인 알함브라 궁전보다도 그날의 밤 추억이 오래 기억이 남습니다. 궁전 투어를 마치고 지친 상태로 숙소로 돌아왔을 때, 숙소 주인 부부가 야경 투어 프로그램을 추천해준 덕분. 다만 서양인 대상으로 진행되는 현지 가이드 투어라 한국인이 없고, 영어라 다소 버거울 수 있겠지만 듣다 보니 흥미가 생겨 예약해달라고 했습니다.

 

저녁 때쯤 현지 여행사 앞에서 저를 픽업하러 대형 관광버스가 도착했고, 그 안에는 물론 서양인들만 가득했습니다. 사실 위축됐지만, 위축되지 않은 척 굉장히 흥미로운 척, 알아듣는 척 동행에 합류했습니다. 그들은 동양인 여자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겠지만.

 

현지 야경 투어에는 알함브라 궁전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언덕을 오른 뒤 플라멩고 공연을 보는 코스로 구성돼 있었습니다. 저는 스페인 모녀와 가까이 다녔는데, 그들이 저에게 물은 첫 질문은 "북한이냐, 남한이냐" 였고, 남한(South Korea)이라고 하자 안타깝게도 아는 바가 많이 없다는 답변을 들은 뒤로 대화가 끊겼습니다. 저의 영어도, 그 모녀의 영어 실력도 물론 너무 짧았고요.

 

 

 

 

 

그럼에도 이 현지 투어는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가이드 때문이죠. 주황색 티셔츠를 입은 스페인 남자가 바로 현지 가이드입니다. 찢어진 청바지에 조리 차림으로 나타난 그는 영어, 스페인어, 불어 무려 3가지 언어를 번갈아 구사하며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제가 알아들은 바는 물론 영어, 그중에서도 극히 일부였지만 알아들을 수 없더라도 스페인어와 불어를 듣는 자체만으로도 황홀한 시간들이었습니다.

 

투어는 열정적이었고,

 

 

 

 

 

가이드는 유머러스했습니다. 투어 도중 자신의 집에 들러 차 한잔 하고 가자는 농담을 던졌고, 사람들은 모두 여유롭게 웃을 줄 알았습니다.

 

다음 순서는 동굴 플라멩고 공연을 보러 가는 것.

 

 

 

 

 

샹그리아 또는 와인 한 잔을 선택할 수 있었고, 투어 참여자들은 모두 양끝에 일렬로 앉아 공연을 기다렸습니다. 긴장도 됐고, 공연 시간이 딜레이되면서 저는 홀로 집(숙소)을 잘 찾아갈 수 있을지 차츰 걱정이 됐습니다.

 

 

 

 

 

그래도 공연은 시작됐고,

비록 사진 초점은 하나도 맞지 않았지만 저는 그걸 제외하고는 모든 게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플라멩고 춤을 추는 여자들은 나이가 있어 보였지만, 그들의 몸짓은 전혀 나이들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현란했고, 진실됐고, 경건하기까지 했습니다. 다만 왜인지 모르게 저는 플라멩고 음악도, 그리고 춤추는 사람들을 보며 애잔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분명 밝고 경쾌하고 신나는 느낌은 아니었어요.

 

너의 세계를 지날 때,

라는 문구가 생각났고

 

마지막에 다같이 춤추는 시간이 되자 미국인, 호주인, 프랑스인 가릴 것 없이 모두 다 자리에 일어나 몸을 흔들었습니다. 특히 가까이 함께 다녔던 스페인 모녀의 그루브가 꽤 대단했습니다. 그 자리를 어색해하는 건 저뿐인 것 같았습니다.

 

공연은 밤 12시가 다 되어 끝났고 저는 숙소로 가는 골목길을 어떻게 하면 빨리 지나갈 수 있을지 너무도 걱정이 됐습니다. 이렇게 소매치기라도 만나면 아무도 모르게 사라질 거 같아 두려웠는데, 두렵다는 생각을 떨치려고 할수록 두려운 생각은 점점 더 커졌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부리나케 내달려 숙소로 허겁지겁 올라와 들어오고 나니 방을 같이 쓰게 된 한국인 여자가 나와 반겨줬습니다.

 

짐은 있는데, 한참동안 돌아오지 않아 무슨 일이 생긴 줄로만 알았다고,

그게 우리의 첫 인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