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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영화다

[부러진 화살] 우리가 왜 이 남자의 분노에 주목해야 하는가?

<부러진 화살>


논쟁적 영화 <부러진 화살>을 본 뒤 머리를 가득 채운 수많은 질문들을 하나로 요약해보고 싶다. 평부터 하자면 이렇다. 영화는 수작이다. 영화가 보여주듯 사법 권력의 불공정성, 재판 과정과 절차의 편향성은 명백하게 비판받아야 한다. <부러진 화살>은 <도가니>에 이어 사법부 불신과 분노를 재점화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개봉한지 얼마 되지 않아 관객 수 100만 명을 넘고, 곧 200만 명 돌파를 앞둘 만큼 주목도가 높아야‘만’ 하는 영화는 아니란 생각이다. 반드시 봐야 하는(must) 영화가 아니라는 얘기다. 감독이 수차례 인터뷰를 통해 “이 영화는 98%가 사실이고, 2%가 허구”라고 했지만, 이 말에 수긍할 수 있을 정도로 영화가 잘 짜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는 대립하는 팩트, 충돌하는 증거를 관객에게 동등하게 제공하지 않는다. 감독이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배제된 팩트가 많다. 때문에 사건 전말을 모른 채 극장을 찾은 관객에게 정보 쏠림 현상을 낳을 수 있다.

영화는 알다시피 교수 재임용에 탈락한 김명호(영화 ‘김경호’) 전 성균관대 교수의 사건을 재구성한 것이다. 교수 재임용에 탈락한 김 전 교수는 이민을 갔다가 사립학교법이 개정되면서 복직(재임용)된 다른 교수 사례를 기사를 통해 알게 된다. 기사에서 희망을 본 김 전 교수는 복직을 꿈꾸며 한국으로 들어온다. 그럼 그가 재임용에 탈락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하게 말하면 이렇다. 대학별고사 ‘수학’문제의 오류를 지적했는데, 모범답안을 따르라는 다른 교수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고 계속 문제제기를 하자 대학은 교수를 불편(?)하게 혹은 귀찮게 여겨 재임용 안했다는 것. 여기까지는 영화의 설명이다. 다른 팩트를 접하지 않고 영화를 보았더라면 나는 영화에서 보여주는 대로 학문을 바로잡는 그의 신념과 올곧음을 높이 추앙했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교수는 오류를 정정하려다 교수집단에서 왕따를 당하는 약자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실제에서는 조금 다르다. 그가 재임용에 탈락한 건 오류 제기가 아니라 교수로서의 자질이 부족했던 데에서 비롯됐다. 학습 방해, 잦은 욕설과 비방, 충실한 강의 이행 등 교수의 본분을 다하지 못했기에 법원은 재임용 탈락 무효의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재판과정에서 이 부분에 대한 학생들 증언과 진술이 받아들여졌다는 글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난다. 물론 나 또한 누군가에 의해 재가공된 정보를 접한 것이기에 실체적 진실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또, 영화에서 김 교수의 부인이 말하듯 같은 대학 출신의 판사가 재판을 맡으면서 판결의 공정성, 객관성이 엄격하게 지켜지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는 의혹도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이러한 배경은 영화를 보는데 불필요한 정보일 수도 있다. 영화 속 재판은 그의 교수 재임용 탈락의 부당함을 가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재판은 김 전 교수가 자신의 재임용 탈락이 문제없다고 판결한 박 판사에게 화살을 쐈느냐의 진위여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따라서 그가 약자로 그려졌다 하더라도 용인할 수 있는 범주에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우리를 분노하게 한 것은 화살을 쐈느냐 안 쐈느냐를 가리는 과정에서 드러난 사법부의 태도다. 와이셔츠에 묻은 혈흔감정의뢰를 기각한 것, 박 판사를 증인으로 채택하자는 것 역시 기각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피고의 무죄를 증명할 단서들을 아예 차단해버림으로써 정말 피고인은 무고한데 사법부가 사법 권력에 대한 도전과 심판이라고 철벽방어(?)로 맞서 권력을 굳건히 하려던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게 만들었다. 2심(항소심)을 맡았던 변호사가 계속해서 검찰이 제출한 증거 불충분을 증명해나가자 재판을 맡던 담당판사가 공판 중에 사임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의혹과 불신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언론도 가세하면서 판은 더욱 커졌다. 게다가 영화에서는 이 판결을 심층보도·방영하기로 한 언론들이 전부 결정적 순간에 기사를 엎거나 편성보류를 하는 식으로 등을 돌린다. 때문에 더욱더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미궁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진실은 무엇일까?

영화 밖 실제에서 김 전 교수는 재판장에서 화살을 쐈다고도 했다가, 다시 쏘지 않았다고 하는 식으로 진술을 번복했다. 그리고 화살을 쏘기 한 달 전부터 박 부장판사 집을 찾아 귀가시간을 확인했다. 검찰은 목격자·증인의 진술을 토대로 교수의 범죄를 입증해갔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실제에서의 기록들이고, 영화에서는 이 부분이 누락돼있다. 아무리 영화라 하더라도 논란을 불러일으킬 여지가 있다면 재판과정을 그려내는데 적어도 양적 균형성은 유지해야하지 않았을까. 그게 아니었다면 ‘98%의 진실’은 말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다큐가 아니다, 영화라는 장르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등등 어떤 말을 붙이더라도 부족했던 측면은 분명히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도가니>를 보고난 뒤 이미 소설을 봤었음에도 불구하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분노가 치밀었고 한편으로는 무너지지 않는 기득권에 절망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부러진 화살>을 보고난 뒤에는 쉬이 분노가 끌어 오르지 않았다. 사법부에 문제가 있다는 데에는 동의하는 바이나, 사법부를 문제 삼는데 이 사건만으로는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 적절치 못했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였을까. 영화의 중반부까지 나를 몰입하게 만든 것은 교수가 아니었다. 오히려 교수의 항소심 변호를 맡았던 박 변호사다. 영화에서는 박원상 씨가 변호사로 나온다. 그는 노동자 집회 주동자였지만 자신이 변호사라는 이유만으로 공권력이 행하는 폭력으로부터 혼자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 지점도 생각해볼 만한 것 같다. 경찰과 변호사의 보이지 않는 서열관계, 그것을 좌우하는 더 큰 집단세력.) 하지만 곧 그것은 그를 옭아매는 덫이 됐다. 그는 자괴감, 죄책감 때문에 알코올 없이는 일을 할 수 없었다. 변호사의 이런 배경, 그 삶의 역사가 내게는 무엇보다 호소력 있게 다가왔다. 물론 그것도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깨지고 말았지만.

<부러진 화살>은 보고 싶은 영화라기보다는 봐야할 것 같은 영화에 가까웠다. 하지만 역시 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다.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와 비판의 지점을 던져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