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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리뷰] 변두리 제일 첫 장을 통째로 할애해 적어 놓은 ‘내 삶의 중심, 변두리에게’란 말이 괜히 마음을 짓눌러 시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하고 싶은 말과 해야 할 말이 아카시아 꽃잎처럼 머릿속에 흐드러졌다”던 주인공 수원의 말처럼. 내가 를 읽고 느낀 감정과 작가가 글을 쓸 수밖에 없었을 어린 시절의 경험은 설명이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내가 가진 빈약한 단어와 문장으로는 더더욱. 유은실 작가의 는 사실 문장이 수려하거나 재치 넘치는 소설과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정공법을 구사하는 쪽에 가깝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피하지도, 우회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때로 가혹할 정도로 디테일한 묘사가 뒤따른다. 제목에서 유추 가능하듯, 는 넉넉지 않은 가정환경 탓에 서울의 가장 변두리에 속하는 .. 더보기
[리뷰] 폴링 인 폴 ‘자신의 글이 소설이라 명명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아 괴로웠다’는 백수린 작가의 소설집 을 읽었다. 남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인물들의 감정과 심리가 세밀하게 묘사돼 있었다. 특별히 걸리는 부분은 없었다. 오히려 쉽게 읽혔다. 그게 잘못이었을까. 나는 빠르게 읽기에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정확하게 읽는 데는 분명하게 실패했다는 생각이다. 9편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하나의 메시지를 발견해내기까지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것이 불가능의 영역이었다 할지라도, 나는 찾고 싶었고, 나름의 방식으로 명명하고 싶었다. ‘감자의 실종’으로 시작돼 ‘꽃피는 봄이 오면’으로 끝나는 9편의 소설에는 각기 다른 인물이 등장한다. 소설에는 저마다의 시간과 계절이 있고, 갈등과 고민이 존.. 더보기
[리뷰] 게으른 삶 “반복되는 일상에서 드물게 찾아오는 게으른 순간들. 나는 항상 그런 게으른 순간들을 사랑한다. 빨래를 널어놓고 한숨 돌리는 시간, 카페에 늘어져 차를 마시는 시간, 햇빛 속에서 기지개를 켜는 시간, 소중한 사람과 따뜻한 포옹을 나누는 시간, 그런 순간들로 삶이 채워지기를 언제나 바라왔다.” ‘게으른 시간 속에서 더 많이 사랑하기를 빈다’는 작가의 말에 이끌려 설레는 마음으로 이종산 작가의 을 읽기 시작했다. 낯선 타국, 골목에서 길 헤매는 시간을 즐기는 나는, 작가 역시 ‘진짜’ 이야기는 한발 물러나 있는 ‘그곳’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안다고 생각했던 까닭이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소설을 다 읽고도 한참이나 평을 쓸 수 없었다. 너구리를 닮은 겁 많은 여자아이와 참치 통조림을 가지고 다니는 담백한 남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