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썸네일형 리스트형 골목길 찬가 낯선 곳에 가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있다. 그건 바로 책방을 찾는 일인데, 퀴퀴한 책방에서 축축하면서도 건조한 듯한 책냄새를 맡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이는 헌책방일수록 더하다. 그리고 겉표지만 보고 책을 잡아든다.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되어있지만, 이 책을 거쳐 간 사람을 추측해볼 수 있다. 헌책에는 오랜 시간을 거쳐 내 손에 쥐어지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흔척이 담겨 있다. 4년전쯤, 나는 저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몇 권의 책을 살펴보던 중, 주인아저씨가 회색의 거친 종이로 감싸진 책을 들고와서는 "사랑에 관한 아름다운 이야기예요."라며 추천해 주었다. 사랑타령을 하는 여자로 보였던 걸까? 내게 썩 흥미로운 주제는 아니었지만, 한지 느낌이 나는 회색 표지와 손으로 직접 쓴 책 제목.. 더보기 피아노 치는 남자 피아노 치는 남자(piano man) 5월 6일, 석가탄신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하늘은 숨이 멎을 정도로 맑았다. 숨이 멎을 정도로 맑은 것이 어떤 것인지 논리정연하게 설명할 자신은 없다. 다만, 눈이 부셨고 뜨거웠고 뜨거운 공기가 마치 진공 상태인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 정도의 설명을 덧붙일 수 있을 듯 하다. 나를 잘 따르는 친구이자 동생인 최 모양은 소개팅했던 썸남과 남양주 카페 놀러간다며, 대만 출장에서 돌아온 그가 가져온 선물이 무엇인지 받자마자 보고하겠다며 들떠 카톡을 보냈다. 이제 거의 반평생을 함께 지내온 절친 중 한명은 그간의 피로를 날려버리겠다는듯 경주가는 기차 안에서 이동 보고식 카톡을 보냈다. 나는,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맑은 하늘을 내려다보면서도 들뜨지도, 기쁘지도, 설레지도 않았.. 더보기 '아버지'라 부르게 될 머지 않은 날, 퇴직한 아빠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크고 작은 변화가 생겼다. 사소한 것부터 말하자면 이런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한창 화장하느라 바쁜 내 곁에 다가와 아침부터 말을 건다거나, 구두를 신고 있는데 현관 앞으로 와서는 나이가 들어보이니 이제 머리스타일을 조금 바꿔보는게 어떠냐는 것. 일상의 잔소리는 줄곧 엄마 몫이었으나 이제 점차 아빠에게로도 옮겨가는 듯 보였다. 이런 것쯤이야 십수 년 간 엄마에게 귀가 닳도록 들어온 것이니 때때로 귀찮게, 또 때로는 기분 나쁘게 들리더라도 엄마가 아빠로, 대상만 바뀌었을 뿐 익숙하고도 오래된 것이라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정작 내가 낯설고도 어색한 것은 다른 데서 예고도 없이 문득문득 찾아왔다. 아빠는 종종 엄마 부탁으로 찬거리를 사러 가까운 동네 시장을 나.. 더보기 이전 1 ··· 3 4 5 6 7 8 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