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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청춘, 그 찬란한 기록


몹시도 추웠던 2월 중순

나는 날씨보다도 더 추웠던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그동안 벼르고 별렀던 맥긴리 사진전을 보러 다녀왔다.


먼저 보고 말겠다는 그를 달래 꼭, 반드시, 같이 보자고 신신당부한 것도, 먼저 약속을 한 것도 분명 나였다.

그런데도 나는 끝끝내- 혼자 보고야 말았다.



-



 



그날은 평일 낮 시간이었는데도 사람이 많았다.

대림미술관에 사람이 많을 거라는 것은 역에 내리면서부터 알 수 있었다.

찾아가는 길을 묻지 않고도 앞에 가는 사람만 따라가면 누구나 미술관을 찾을 수 있을 만큼

3번 출구를 나와 스타벅스 골목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열이면 열 모두 맥긴리 전을 보러 가는 사람들이었다.  

평일 낮에도 사람은 참 많았다.


입구에 다다를 무렵

나는 스물 남짓 되었을 법한 여자 넷 무리를 보게 됐다. 

분명 미술관을 왔을 텐데 들어가지 않고 여자 넷은 입구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본인들을 쳐다보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는지 무리 중 한 명이 내게 다가왔다. 

가까이서 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입학식을 앞둔 대학 새내기라는 것을.


"저, 혼자 오셨나요?"

"네, 그런데요?"

"저, 정말 죄송한데...............저희도 맥긴리 전을 보고 싶어 왔는데 전시회가 19세 미만 입장 불가더라고요."


그렇게 다가와 몇 마디 건네며 너무도 간절하게 부탁한 건 그들의 보호자가 되어달라는 것이었다.

20살은 맞지만 아직 생일이 지나지 않아서 입장권을 살 수 없는 20살. 

그들은 아주 잠깐 자신들의 보호자가 되어 같이 입장만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그순간

당황했던 것 같다.

보호자가 되어달라는 건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러면서 괜히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여기를 지나갔을 텐데 왜 하필 나지, 내가 부탁을 거절 못하게 생겼나, 같은.

그러다 네 명을 다시 쳐다봤을 때

웃음이 났던 것 같다.

이제야 비로소 사회가 규정해놓은 성인의 나이가 되었겠거니 했는데 예상치못한 관문에 당혹해했을 것 같은, 

아직 어린 어른인 그런 그들이 한없이 귀여워보였다.

19금 영화를 보려고 민증을 빌렸던 친구와 극장에서 생쑈를 했던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올라

나는 아주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보호자가 될테니 같이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요, 그럼."


물론 실제 티켓을 살 때는 살짝 번거로운 일이 기다리기도 했다.

보호자서명서에 사인을 해야 했고, 미술관에서 어떤 일이 생길 경우 온전히 내가 책임을 져야 했다.

주저하는 내게, 그들은 본인들은 아무런 소동이나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사진전만 보고 갈 것이니 걱정말아달라고 했다. 


흔쾌히 그러자고 했던 내 행동, 

서성거리고 있는 그들을 보고, 그들이 말 걸거라 알면서도 외면하지 않았던 내 오지랖에

아주 잠깐 후회가 들었다.

그러나 역시, 그것도 잠시. 

나는 그들의 친척 언니 혹은 과외 선생님이 되었다. 


티켓은 무사히 샀으니 서로 각자 보면 끝이었다.

그런데 그때, 넷은 맥긴리전 사진엽서를 사서 내게 주었다.

정말 감사하다면서.

괜찮다고 하는데도 받아달라기에 나도 고맙게 받겠다고 했다. (뒤늦게 조금 더 거절하는 게 맞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맥긴리 전을 다 보고 나오면서 생각했다.


골목 앞에서 서성거리던 그들은,

청춘의 길에 들어서기 시작한 그들은,

청춘을 뜨겁게 보내온 과거의 나였다.

날마다 설렜던 10년 전의 나였다.


그 길목에 서서 

청춘의 길목에 선 그들과

청춘의 길목을 나선 내가 

그렇게 청춘을 만났다가 

그렇게 청춘과 헤어졌다.





-



맥긴리 사진전은

사진전을 보고 썼다는 유희경 시인의 시와 sigur ros의 음악 덕분에 더욱 몰입이 되었다.

작품마다 달리 써내려간 시가 사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줬다.


그때 당시엔 하나의 사진마다 떠오르는 생각이 많았는데 지금 많이 잊혀졌을 거다.

그래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 감정은 있기에 몇자 적어본다.




   




손을 뻗어 소리를 지르거나, 마구 달리거나, 뛰거나, 뛰어내리거나, 머리가 앞으로 휘몰아치도록 바람을 맞거나

웅크리고 있거나 혹은 기지개를 펴거나

다 벗고 있으면서도 당당하거나

그 모든 행동이 그 자체로 '청춘'임을 증명해내고 있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도 말이다.

억지스러운 모습이 없었다. 





바다 한 가운데 나체로 서 있거나 어린아이 마냥 모래 사막을 굴러내려오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쳐다보다가

나는 평범한 나날이었던 내게도

나체는 아니어도 바다 한 가운데 친구들과 환호하던 내가 있었고

사막을 타고 내려오면서 신이 났던 내가 있었고

금방이라도 앞으로 고꾸라질 것 같은 트럭에 위태롭게 쭈그리고 있으면서도 배가 찢어지도록 웃던 내가 있었고

평범한 나날 속에도 문득문득 즐거워지는 청춘이 있었음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맥긴리 사진 속 친구들이 부럽지 않았다.

웃었고 흐뭇했고 반가웠다.

내게도 그런 날들이 있어서.


깜깜한 동굴에 누워 밤하늘을 쳐다봤다는 사진 설명을 들으면서 나는

강원도 어느 작은 초등학교에서 텐트를 치고 정말 쏟아질 것처럼 많은 별들을 보았던 스무 살을

발바닥 가득한 물집 덕분에 열 여섯 명이 다같이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었던 스무 살 여름을 떠올렸다.


사막을 굴러 내려오는 모습을 담았던 사진을 보면서

인도 자이살메르 사막에서 땅따먹기를 하면서 즐거워했던 스물 세살을

처음 만난 한국인, 인도인이 함께 사막 한가운데에서 캠프파이어를 했던 그때를

허름한 천막에 침낭을 깔고 무섭도록 차가웠던 새벽 공기보다 더 무서웠던 전갈에 잠못잤던, 그러면서도 그저 다같이 웃느라 정신없었던 그날을  

나는 생각했다.


나는 분명 스무살 때도, 스물 세살 때도

불안하고 답답하고 초조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즐거웠던 기억들 뿐이다. 


나는 맥긴리 전을 보는 내내

나의 청춘과 즐겁게 조우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시규어로스의 뮤직비디오처럼

시간이 멈춘 채 홀로 자유롭게 거닐었던, 뛰어다니던 뮤직비디오 소녀처럼

나이가 들어도 나는 청춘의 마음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시간에 지는 것도, 시간에 지지 않는 것도 마음에 달려있으니까. 







-



그만큼 맥긴리전은 좋았지만

맥긴리전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마음이 불편하다. 

내가 일방적으로 했던 그와의 약속을 이번에도, 지난번과 같이 또 다시 먼저 어겼기 때문에.


맥긴리 전이 끝나고, 새로운 전시가 시작되려는 지금까지도 

나는 그에게 연락을 못하고 있다.

나의 변덕스러운 마음을 그가 모를리 없다.

어쩌면 이번에도 역시나, 라고. 

하지만 그는 기분이 많이 상했을 것이다.

번번이 파토내는 내 행동이 무례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나 스스로도 이렇게 하면 안되는데, 싶었던 순간이 몇 번. 잘못한 걸 모르지 않는다.

잘못한 걸 알기에 사과했어야 한다.

그러나 몇 번이나 연락할 타이밍을 놓쳐버려 이제 나는 

미안한 마음을 그에게 무관심한 마음으로 쳐박아 두고 있는 중이다.

3월 13일이 생일이었던 걸 모르지 않았으면서도 모르는 척 보냈고

모르는 척 지나간게 마음에 걸려 다소 늦었지만 기프티콘이라도 보낼까 하려다가

그에게 미안한 마음을, 그저 내 마음 편하자고, 기프티콘이라는 너무나 편리하고도 간단하게 처리해버리려는 것 또한

감정과 관계에 대한 예의는 아닌 듯 싶어 그만두었다. 

그렇게 고민만 하다가 결국 축하한다는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한 채 보내고 말았다.

시간이 더 지나가면 또 다시 아무 일 없었던 듯 연락하게 될까.

아니면 아예 멀어지게 될까.


멀어지지 않았으면 좋겠고

어쩌면 그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일에 이렇게나 생각이 많은 내가 쓸데없이 생각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무엇보다 마음이 확실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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